8월 28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한국수력원자력 본부 주변에 신고리 원전 5,6호기가 건설되고 있다. 울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부가 24일 국무회의를 거쳐 심의·의결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은 탈원전을 사회와 국민이 함께 이끌어가야 할 프로젝트로 명확히 설정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신고리5·6호기 건설 재개가 오히려 탈원전 속도를 내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의결된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장래 우리나라 원전 수가 2022년 28기, 2031년 18기, 2038년 14기 등으로 확정됐다는 점이다. 한국의 미래 원전 수가 국가 공식문서에서 명확하게 제시되고 등장한 건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최초임계(원전 연쇄핵분열 가동 시작) 이후 40여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이런 단계적 원전 감축 방안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31년까지)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2038년까지)에 반영하기로 했다. 5년 뒤에 집권 세력이 바뀌더라도 ‘탈원전으로 가는 길’을 뒤집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속 가능한 탈원전을 위해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정부 관료와 정치세력이 주도하기보다는 전 국민과 사회가 함께 이끌어가는 프로젝트로 설정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이날 열린 언론브리핑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 말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백 장관은 ‘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탈원전 로드맵도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탈원전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민의 대다수가 탈원전에 공감했다.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았다고 본다”며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도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동의를 받은 만큼 탈원전 로드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현재 국내 전체 발전량의 7%인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등)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겠다며 “특히 협동조합과 시민 중심의 소규모 태양광 사업을 지원·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가지 두드러진 대목은 법·제도 개정을 통해 탈원전을 돌파하지 않고, 원전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 간의 ‘협의’를 통해 로드맵이 차근차근 이행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로와 2038년까지 수명이 만료되는 노후 원전(총 14기)의 수명연장 금지와 관련해 정부는 기존 원자력 관련법이나 전기사업법을 고치거나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해 금지 근거를 명시하는 방안은 가급적 피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 제·개정 방식은 정치적·사회적 논란을 부르게 될 공산이 있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 ‘숙의’와 유사하게 ‘관계기관 사이의 협의’를 통해 풀어가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탈원전에 반발하거나 회의적인 집단·지역을 설득해가면서 국민의 탈원전 동참 확대를 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무엇보다 원전 해체 산업 육성이 대표적이다. 탈원전 이행 과정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원전산업·지역의 소득 및 일자리 등 경제적 피해에 대한 보전대책도 기금 등 여유재원을 활용해 광범위하게 마련하기로 했다. 태양광 패널 보급 방식도 ‘탈원전 동참’이란 목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태양광 패널이 국토에 무분별하게 난립하면 자연환경이 훼손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정부는 대규모의 태양광 ‘계획입지’를 마련함으로써 막개발을 막아 비판을 불식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한편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오히려 탈원전을 더 가열차게 추진할 수 있는 국면 조성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회적 논란이 수그러들어 탈원전에 더 탄력이 붙었다는 얘기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발표 이후 나흘 만에 정부가 국정 최고의결기구인 국무회의를 거쳐 에너지 전환 정책의 중장기 목표·방향을 담은 로드맵을 전격 발표한 것도 탈원전을 향한 자신감의 반영으로 풀이된다. ‘국무회의 의결’은 원전을 둘러싼 더 이상의 여론 분열을 서둘러 종식시키겠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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