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인구구조 변화, 기술변화라는 삼각파도는 노동과 일자리에 큰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모바일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면서 앱에서 일을 수주하는 플랫폼 노동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자영업자인지 노동자인지는 아직 노동규범과 사회보장의 회색지대에 있다. 노동형태와 노동조건만이 아니다. 임금노동을 통해 유지되던 분배, 사회보장 등 광범위한 경제·사회정책들이 일의 변화와 함께 다시 구성돼야 한다. 그래서 ‘일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한 사회의 30년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독일 사회는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런 큰 변화에 대응해왔다. 제조업체의 국외 이전으로 일자리가 줄고 미국 주도의 디지털화에 밀린다는 위기감에서 2012년부터 ‘산업 4.0’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알고 연방노동사회부(BMAS) 주도로 ‘노동 4.0’이라는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다. 2015년 초, 산업 4.0에 사회적·인간적 의미를 담은 ‘좋은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녹서>를 펴내 이를 지방정부, 시민단체·연구소, 노동조합, 재계 등에 보내 토론하게 한 것이다.
1년 반의 대화를 통해 도출한 결론을 담은 <백서>는 2016년 말 발표됐다. 백서는 △원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노동시장 △일과 삶의 균형과 직결되는 노동의 시·공간적 유연성에 대한 노사 합의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노동자 개인정보의 보호 △사회복지 안전망의 미래 등 8개 주요 과제 토론 내용과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토르벤 알브레히트 연방노동사회부 차관은 ‘일의 미래’에 대한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인 노동 4.0을 주관했다. 독일노동총동맹(DGB)에서 활동하다 사민당에서 정치적 경력을 쌓았다. 그는 지난달 16일 베를린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크게 변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노동조건이 크게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며 “모든 변화는 기술과 사람이 함께 가야 한다. 기술만 중시하면 노동자는 일방적으로 ‘사용되는’ 모습이 되고, 그러면 인간의 창의력과 생산성, 잠재력이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알브레히트 차관은 “한 예로 노동시간의 문제가 있는데 특히 논란이 심했다. 이제 시·공간을 초월해서 노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니 사용자는 당연히 하루 24시간 일할 수 있는 유연화를 원한다. 하지만 노동자는 오후에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대신 저녁에 일할 수도 있는 유연화를 생각할 것”이라며 이처럼 “여러 이슈가 적지 않게 비판적이고 논쟁적이었지만 꾸준히 대화함으로써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백서>를 통해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일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노사정 합의가 마련된 만큼, 이런 합의를 새롭게 적용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화와 같은 큰 변화에 대응하려면 “사용자와 노동자, 정부의 3자 대화는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독일의 사회적 대화에서 특징적인 것은 사용자와 정부도 노동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노조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알브레히트 차관은 “독일 노조는 지적인 발전이나 기술적 발전에 부정적인 태도만 취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런 변화에 함께하지 못하면 일자리 감소나 노동조건 악화 같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노조는 새로운 기술이 ‘예스’, ‘노’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기술 발전이 변화를 요구하면 노동세계에서 어떻게 만들어가야 가장 좋은 모습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높지만 노동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의 전통도 약하다. 이에 알브레히트 차관은 “급속한 변화가 있고 그것이 노사 갈등을 만들 때 이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갈등이 심화한다. 어려울수록, 변화가 요구될수록 대화는 필요하다. 이때 정부가 지원해줌으로써 대화의 실마리를 원활히 풀어나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독일은 산업의 혁신과 노동 존중이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우리도 노사정, 연구소, 시민단체가 마주 앉아 디지털 시대의 산업과 일,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갈 때다.
베를린/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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