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시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 도시를 변화시키겠단 이야기인데, 정작 시민들에겐 잘 와닿지 않는 말입니다. 때마침 지난 11월6일부터 24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한 스마트시티 마스터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는데요. 스마트시티 전략을 내놓았던 런던·바르셀로나·암스테르담 등 유럽 3개 도시를 돌아보는 일정이었습니다. 각 국가와 도시 상황에 따라 스마트시티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른데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시민의 삶을 개선하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각 도시에서 만난 이들이 보여주거나 들려준 새로운 움직임 가운데 ‘내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고민을 던져준 세 가지 장면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난 10월 네덜란드에선 플라스틱 쓰레기를 3D 프린팅해 만든 벤치 ‘XXX’가 공개됐다. ‘프린트 유어 시티’ 누리집 갈무리
귀국을 하루 앞둔 11월22일 요즘 ‘핫’하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부 뷔크슬로테르함 지역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래된 나무 자재와 건축물 폐기장에서 볼 법한 고철로 얼기설기 지은 듯한 카페로 들어섰다.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젊은 손님들의 생기가 돌았다. 느타리버섯이 들어간 8유로짜리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커피 찌꺼기로 키운 버섯이라고 했다. 몇해 전 국내 언론에서 커피 찌꺼기가 버섯을 잘 자라게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버섯균은 커피 찌꺼기에 남아 있던 카페인 성분을 분해해 퇴비로 기능하게 해준다고 했다. 식기를 세팅할 때 가져다준 냅킨엔 ‘100% 재활용’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유기농 음식은 조미료에 입맛이 단련된 이에게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오산이었다. 허겁지겁 한 끼를 먹어치운 뒤 문득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궁금해졌다.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메뉴판에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 더 쇠벌(DE CEUVEL)은 암스테르담 항구에서 온 80년 된 기둥과 스헤베닝언 해변에서 구조대가 사용했던 오래된 구조물 등 폐자재로 지어졌다. 우리 옥상엔 아쿠아포닉스(Aquaponics) 시스템을 갖춘 온실이 있다. 아쿠아포닉스는 수족관과 수경재배를 융합한 기술로, 물고기를 키울 때 나오는 배설물을 채소에 공급하고 식물 뿌리는 물속에 녹아든 영양을 섭취하면서 유해한 암모니아를 정화시켜 깨끗한 물을 수족관에 돌려주는 것을 가리킨다. 현재 유기성 폐기물(축산 분뇨, 음식물 쓰레기 등 유기물질을 포함한 폐기물)을 가스로 전환해 요리를 할 수 있는 ‘바이오가스 보트’를 세계 최초로 건설 중이다.”
80년 된 기둥을 비롯한 폐자재로 지어진 ‘카페 더 쇠벌’
‘카페 더 쇠벌’에서 먹은 샌드위치. 커피 찌꺼기로 키운 버섯을 재료로 사용했다.
고장 난 보트가 사무실로
2014년 문을 연 ‘카페 더 쇠벌’이 자리한 해안가 단지 ‘더 쇠벌’은 과거 선박을 건조하던 곳이다. 2000년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중금속과 기름에 오염된 땅이 그대로 방치됐다. 2010년 암스테르담시는 이 지역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 개발’ 사업 입찰을 진행했다. 2012년 젊은 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시로부터 10년간 땅을 임대받으면서 기발한 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땅이 오염됐다는 의미는 그 아래로 하수구나 가스 파이프를 설치할 수 없다는 뜻이다. 건물을 짓는 대신 물 위에서 수명이 다한 보트와 플로팅하우스(물에 뜨는 집)를 가져다 땅 위에 올렸다. 오염된 토양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나무로 된 보행길을 깔아 보트와 보트를 연결하는 길도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16개의 보트하우스는 사무실과 워크숍 장소, 실험실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이들은 주로 예술가나 사회혁신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흙에서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식물을 심었다. 태양광 패널을 깔아 필요한 전기 중 일부를 생산한다. 음식물 쓰레기 등은 일정한 처리를 거쳐 채소나 식물 재배에 재활용하고 있다. 재사용이 불가능한 폐기물의 경우 최대한 오염물질을 제거해 자연으로 내보낸다. 어떻게든 환경에 영향을 덜 주고 쓰레기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더 쇠벌은 아이디어 기술을 통해 건축·시설 운영, 제품 생산·소비 과정에서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고, 일단 사용한 자원이나 폐기물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실험실로 보였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수년간 순환형 경제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기술 개발 및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의 대량 생산·소비 구조로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세계 인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6년 네덜란드는 2050년까지 지속가능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원자재만 100% 사용하는 순환경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금속과 화석연료 등 원자재 사용을 5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30년까지 원자재 사용 절반으로”
11월14일부터 사흘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엑스포 월드 콩그레스’에 발표자로 참여한 암스테르담시 순환혁신 담당관 슬라댜나 미야토비치는 “순환형 경제체제는 구조적 변화다. 기존 시스템 안에선 순환경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다. 민간 기업과 시민들이 함께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 시작은 전문 연구기관과 함께하는 리서치다. 이를 통해 문제해결 방안이 도출되면, 도시에서 시험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프린트 유어 시티!’를 소개했다. 시민들이 버리는 비닐봉지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공공시설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활동의 첫 결과물은 지난 10월말 공개됐다. 최대 4명이 흔들의자처럼 앉을 수 있는 ‘××× 벤치’였다. 여기서 세개의 ×는 암스테르담을 상징한다. 2015년 통계를 기준으로, 암스테르담 시민 1명이 해마다 쏟아내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23㎏이다. 시민 2명이 1년 동안 배출하는 분량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작은 알갱이로 만든 뒤 세척해 대형 3D 프린터에 넣으면 길이 150㎝, 높이 80㎝의 벤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벤치는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 ‘프린트 유어 시티!’는 폐기물 처리기업 에이이비(AEB) 암스테르담과 델프트 공과대학이 지원하는 순환도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재활용 원료 연구 및 디자인 기관인 ‘더 뉴 로’(The New Raw)가 3D 프린팅 업체와 손잡고 이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 ‘××× 벤치’ 홍보 동영상
암스테르담/글·사진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참고자료: <어번 리빙랩스>(암스테르담 메트로폴리탄 솔루션 연구소·2017), <2050년까지 네덜란드 순환경제>(네덜란드 정부·2016)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태양광 패널을 지붕이 도로 에 설치한다면?’ 지난 2009년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TNO)가 개발을 시작한 ‘솔라로드(SolaRoad)’ 활용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지난 21일 3년전 세계 최초로 솔라로드가 깔린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주 크롬메니아 자전거 도로를 찾았다. 오른쪽 짙은 색 도로가 솔라로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부 엔디에스엠(NDSM) 조선소 터에 남아 있던 크레인은 현재 호텔로 개조돼 사용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해수면보다 낮은 지대에 건설된 도시로, 물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2016년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요리스 후버는 빗물을 모아 맥주를 만들면 어떨까란 상상을 했는데, 이 아이디어는 실제 상품화로 이어졌다. ‘레인비어’ 누리집 갈무리
11월14일부터 사흘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엑스포 월드 콩그레스’에서 암스테르담시는 순환경제를 주제로 한 부스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