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미국이 법인세율을 최고 35%에서 21%로 대폭 낮춘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법인세 논쟁이 뜨겁다. 이달 초 여야가 법인세 최고세율(과표 3천억원 이상)을 22%에서 25%로 올리는 데 합의하며 봉합되는 듯했던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법인세 인상론의 근거는 우선 재정 확충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이다. 한국 정부의 복지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고, 국민의 복지 확대 요구는 커지고 있다. 대기업이 실제 부담하는 실효세율이 10% 후반대로 명목세율에 크게 못 미치고,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대기업은 삼성·현대차 등 70여곳뿐이라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국민소득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는데, 법인세 증가는 미미한 반면 소득세는 급격히 늘어난 것도 인상론의 단골 메뉴다. 과거 법인세 인하 경험에 비춰볼 때 투자 확대, 일자리 증가 등의 경제활성화 효과는 미미하고 양극화만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반대론의 핵심은 전세계가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하는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두 주장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문가까지 총동원한다. 하지만 사안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각자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는 ‘아전인수’ 내지 ‘견강부회’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법인세 인하론자들이 레이건의 감세정책으로 미국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재정적자만 엄청나게 늘어났다”며 “기업이 투자를 결정할 때 세금 외에도 시장접근성, 기술, 인력, 규제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하지만, 자본의 높은 이동성 때문에 법인세는 소득세보다 국제 흐름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도 맞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5개국 중에서 법인세를 내린 나라는 독일·영국·일본 등 21개국에 이른다. 반면 법인세를 올린 나라는 그리스를 포함해 5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은 현재는 17번째로 높지만, 내년부터는 8번째로 뛰어오른다.
이런 국제 흐름이 한국에서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데는 결정적 이유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기업을 일종의 사회적 공기(公器)로 여긴다. 기업이 잘되면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의 삶도 나아진다고 믿는다. 한국도 한때 기업 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비교적 골고루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낙수효과’가 사라졌다. 고용 없는 성장, 비정규직 양산,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붕괴로 대체됐다. 오히려 기업소득이 크게 늘어난 뒤 양극화만 심화됐다는 불신이 짙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이 잘되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재벌 총수들이 기업을 개인 재산처럼 여기고, 사익을 위해 편법·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행태는 기업 불신을 부추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영권 승계를 위해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국정농단 세력에게 뇌물로 주고, 회사일을 하지 않는 가족에게 수백억원의 급여를 지급하고, 개인집 수리에 수십억원의 회삿돈을 빼 쓴 혐의로 여러 총수가 재판이나 조사를 받고 있다.
원전 공론화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을 지지하면서도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결정해 ‘신의 한 수’라는 박수를 받았다. 중장기적으로 원칙(탈원전)에 충실하면서도, 단기적으로 현실적 요구(원전 공사 재개)를 조화시킨 게 주효했다. 법인세에도 이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중장기적으로 법인세를 국제 흐름에 맞추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단기적으로는 재정 확충이라는 현실적 요구를 대기업이 과감히 수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지속적인 재정 확충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법인세뿐만 아니라 소득세·부가세 등 다른 세목의 인상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법인세는 국제 수준에 맞추는 대신 부자들에 대한 소득세를 대폭 인상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정수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지난 5일 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과표 3천억원 이상 구간 세율을 25%로 높인 법인세법 개정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있다. 국회는 지유한국당의 불참 속에 재석 177명 중 찬성 133, 반대 33, 기권 11표로 통과시켰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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