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새해 벽두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민사소송 등 악재를 만났다. 그는 악재를 극복하고 미래에셋을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키울 수 있을까. 연합뉴스
금융계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불안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미래에셋이 박 회장 일가 소유의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로 조사를 시작했다. 이에 맞춰 금융 당국도 미래에셋대우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사업을 위한 발행어음 인가를 보류했다. 초대형 투자은행은 박 회장이 미래에셋대우를 골드만삭스 같은 세계적 투자회사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인 사업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조사로 박 회장의 큰 꿈에 제동이 걸렸다. 발행어음 사업을 하지 못하면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없어 초대형 투자은행 사업은 진척되기 힘들다. 그만큼 시장에서 경쟁사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미래에셋컨설팅에 일감 몰아주기
이번 공정위 조사는 박 회장 일가의 개인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을 겨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설립된 이 회사는 박 회장(48.63%)과 그의 부인(10.24%), 아들(8.19%), 두 딸(각각 8.19%), 친·인척(8.43%)이 90% 이상 지분을 소유한 비상장회사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캐피탈, 미래에셋펀드서비스 등 주요 계열사를 거느린 사실상의 지주회사이기도 하다.
미래에셋컨설팅은 미래에셋그룹 각 계열사가 조성한 부동산펀드가 투자자의 돈을 모아 개발한 호텔, 골프장 등을 임대해 관리한다. 즉, 계열사로부터 받은 일감으로 돈을 버는 게 이 회사의 수익 모델이다.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에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는 구조 탓에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제기된다.
미래에셋생명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설정한 공모펀드(미래에셋맵스 아시아퍼시픽 공모부동산1호)가 투자해 지은 메리어트 서울판교호텔이 대표적이다. 판교역 인근에 자리잡은 오피스 복합시설인 이 호텔의 관리를 미래에셋컨설팅이 맡았다. 미래에셋컨설팅은 호텔 소유주인 인터에셋홀딩스(특수목적회사)와 임대차계약을 하고 임차료를 지급한다. 임차료를 제외한 호텔 운영 수익은 미래에셋컨설팅이 모두 챙긴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있는 광화문 포시즌 호텔도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래에셋생명 등 미래에셋 계열사가 전액 출자한 사모펀드가 5천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조달해 지은 이 호텔의 관리도 미래에셋컨설팅이 맡았다. 임대차계약으로 임차료를 내고 이를 제외한 호텔 운영 수익은 모두 미래에셋컨설팅이 가져가는 구조다.
오너 일가 소유의 개인회사가 그룹 계열사에서 일감을 받아 이익을 챙기는 구조는 국내 재벌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특별한 경쟁력이 없는 회사도 그룹 계열사의 일감을 몰아주면 알짜 회사가 될 수 있다. 2007년 일감 몰아주기로 공정위 과징금을 부과받은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최대주주(23.29%)인 글로비스는 그룹 계열사의 물류를 전담하면서 급성장했다. 삼성과 LG, SK 등 다른 재벌들도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로 공정위나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오너 일가 사익 편취도 도마 위에
미래에셋 쪽은 공정위 조사에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래에셋컨설팅이 최근 3년 동안 적자를 기록해 주주에게 배당하지 못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박 회장 일가가 챙기는 게 없기 때문에 공정위가 문제 삼을 게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래에셋그룹이 진행해온 호텔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일감 몰아주기에 그치지 않는다. 투자자의 돈으로 호텔사업을 해서 얻은 수익이 투자자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펀드 같은 집합투자업자가 계열사와 거래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투자자에게 가야 할 이익이 계열사를 통해 오너 일가에 귀속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자본시장법 취지에 따르면, 집합투자업자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투자 자산인 호텔의 운영권을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과 거래하는 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투자자와 이해가 충돌할 우려가 없는 거래는 금융 당국의 허가를 받으면 허용된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래에셋컨설팅이 호텔 관리를 맡은 것은 메리어트와 포시즌 쪽에서 다른 회사에 맡기지 말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나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조사 말고 박 회장을 불안하게 하는 ‘사건’은 또 있다. 미국 커피 브랜드 ‘커피빈’의 중국·홍콩 사업권을 두고 한 투자 법인과 1년여간 해온 소송의 1심 결과가 1월19일에 나온다. 박 회장에게 소송을 제기한 프랜차이즈 투자 법인 TNPI는 커피빈의 중국·홍콩 사업권 투자와 경영을 위해 만든 법인이다. TNPI 쪽은 “금융 대기업인 미래에셋이 중소기업의 투자 아이템을 불법적으로 가로챘다”고 주장한다. 이 재판에서 지면 박 회장은 손해배상금을 물 뿐만 아니라 ‘대기업 갑질’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소송의 발단은 2012년 미래에셋의 투자 제안이었다. TNPI는 2012년 미국 커피빈 본사로부터 중국·홍콩 사업권을 따냈다. 당시 커피빈은 ‘콩다방’이라 하며 ‘별다방’ 스타벅스와 함께 한국 커피 프랜차이즈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TNPI는 중국과 홍콩에서도 커피빈이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투자를 제안한 시점은 TNPI가 중국에 이어 홍콩 사업권을 따낼 무렵인 2012년 10월이었다. 권준 TNPI 대표는 “미래에셋 같은 기관투자자를 유치하려면 사업 자료를 잘 준비해 먼저 찾아가 설명한 뒤 투자를 권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래에셋은 이례적으로 먼저 투자를 제안해왔다”고 말했다.
투자 협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래에셋이 2012년 말부터 이랜드와 함께 미국 커피빈 본사 인수를 추진하면서 TNPI와의 관계가 삐걱거린 것이다. 미래에셋은 결국 TNPI와의 투자 협상을 중단하고 2013년 9월 미국 커피빈 본사와 투자인수 계약을 했다. 이 투자로 미래에셋은 커피빈 본사의 주요 주주(3대 주주)가 됐다.
또 하나의 악재 ‘커피빈 소송’
미래에셋그룹은 ‘금융계의 삼성’이라 할 정도로 자본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미래에셋 사옥 센터원. 연합뉴스
미래에셋의 커피빈 본사 투자는 TNPI에 전혀 예상치 못한 악재로 작용했다. TNPI가 따낸 중국 사업권이 이랜드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미국 커피빈 본사는 ‘TNPI가 중국 내 신규 매장 개점 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 사업권 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권준 대표는 “커피빈 본사의 주요 주주인 미래에셋이 중국 사업권을 이랜드에 넘기기 위해 본사를 앞세워 TNPI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 중국과 홍콩은 커피빈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었다. 미래에셋이 우리가 제공한 중국 시장 분석 자료 등을 통해 이런 내용을 알고 아예 커피빈 본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업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TNPI는 박현주 회장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는 등 여러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미래에셋 쪽은 펄쩍 뛴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TNPI와 투자 협상을 한 건 맞지만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서 중단했다. 그 후 2013년 9월 미국 커피빈 본사가 매물로 나와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커피빈 본사가 TNPI의 중국 사업권 계약을 해지한 것은 미래에셋과 전혀 관계가 없다. 미래에셋은 커피빈 본사의 지분 18%를 가진 3대 주주로서 이사 9명 중 1명을 파견할 뿐이다”라고 했다. 미래에셋이 커피빈 본사의 경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처지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후 미국 커피빈 본사가 TNPI에 1800만달러의 합의금을 주는 대가로 박 회장에 대한 각종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을 제시한 것은 미래에셋이 내놓는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TNPI가 정말 계약을 위반해 중국 사업권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면 커피빈 본사가 합의금을 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박 회장에 대한 민형사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을 제시한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미래에셋 쪽 설명대로라면 박 회장은 커피빈 본사의 경영에 영향력이 거의 없는 단순 투자자일 뿐이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커피빈 본사가 합의금을 준 것은 TNPI가 그동안 중국 사업에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 성격이다. 또 박 회장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도록 한 것은 동업자인 미래에셋을 배려한 조처로 안다”고 했다.
미래에셋이 TNPI와 소송 전쟁을 벌인 대가는 크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커피빈은 중국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경쟁사인 스타벅스에 빼앗겼다. 현재 커피빈의 중국 사업 실적은 TNPI의 시장 전망은 물론 커피빈 본사의 목표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커피빈의 중국 사업 부진이 미래에셋과 이랜드의 손실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의 미국 커피빈 본사 투자에 활용된 펀드에는 국민연금과 정책기금공사(현 산업은행) 등 공적연기금의 자금이 투입됐다. 국민연금 등은 이 펀드에 총 3760억원을 투자했는데 이 가운데 730억원이 커피빈 본사 투자에 사용됐다. 커피빈의 중국 사업이 애초 목표에 못 미치면 그에 따른 손실이 공적연기금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 권준 TNPI 대표는 “국민연금 등은 미래에셋이 제출한 투자심의위원회 보고서 등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을 것이다. 커피빈의 중국 사업 실적이 보고서 내용과 차이가 나면 국민연금 쪽에서 뭔가 조처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21>은 국민연금 쪽에 해명을 요청했으나 관련 답변을 듣지 못했다.
소송 이겨도 ‘상처뿐인 승리’
박 회장이 TNPI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 있다. 커피빈이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는 ‘실속 없는 소송에 휘말려 국민의 노후자금에 손실을 입혔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샐러리맨 성공 신화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박현주 회장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싫은 악몽임이 틀림없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