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부터 시작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6차 재협상은, 이달 말이나 2월 초에 열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변수다. ‘나프타 재협상 최종 결렬’ 전망이 벌써 흘러나오는 가운데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테이블에서도 결렬·폐기 옵션은 여전히 양국에 살아있는 ‘실체적 위협’으로 작용하는 카드다. 2차 개정협상부터는 상대방이 던진 카드가 과연 엄포인지 파악하려는 양국의 눈치 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이런 구도 속에 ‘예측불허의 협상 기술’이 오가는 접전이 예상된다.
나프타·미국 내 반발도 변수
지금까지 나프타 재협상은 미국의 비타협적 개정 요구에 “굴욕적 협상은 수용할 수 없다”고 멕시코와 캐나다가 반발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나프타 협상 동향도 한-미 에프티에이 개정협상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다. 23일부터 6차 협상에 돌입하는 나프타는 ‘트럼프의 탈퇴 선언’ 가능성까지 흘러나오는 판국이다. 오성주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의 탈퇴 언급은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일 수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나프타와 한-미 에프티에이 중 하나는 폐기 또는 대폭 개정을 최종 목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부 이해관계자의 반발도 변수다. 한-미 에프티에이 개정협상 과정에서 미국 농산물수출협회와 한국제품 수입업계, 삼성·엘지(LG)전자의 현지공장이 있는 주정부의 지사·의회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지면 미국 협상팀이 협상목표를 수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통상당국자들이 자주 미국을 방문해 개정 반대 인사들을 설득·포섭하는 이른바 ‘아웃리치’ 활동에 나서고 있는 배경이다.
‘폐기’는 양국의 공통 카드
개정협상에 돌입했지만 ‘협정 폐기’ 카드는 여전히 언제든 돌발할 수 있는 ‘실체적 위협’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8일 “나쁜 협상 결과보다는 아예 협정을 타결 못하는 것이 낫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최종 결렬 혹은 파기는 미국 쪽만 아니라 우리 쪽 협상무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차 협상테이블에서 우리 협상팀이 협정문의 관세 조항보다는 협정과의 직접적 관련이 적은 세탁기·태양광패널·철강 등 미국의 한국산 수입규제 공세라는 당면 통상이슈를 문제삼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협정문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할 것이며 우리도 ‘폐기 불사’를 옵션으로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밝혀 ‘대등한 힘’에 기반을 둔 협상게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우리 쪽은 이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협정에 따른 관세철폐·감축 효과보다 양국의 거시·미시적 경제환경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즉, 협정이 깨져도 미국의 목적인 무역수지 불균형은 해소되기 어렵고, 이에 따라 폐기 옵션의 파괴력은 우리 쪽이 더 클 수 있다는 전술을 펴고 있는 셈이다.
“협상은 장사치들의 게임판”
우리 쪽 협상 수석대표인 유명희 통상정책국장은 1차 협상 뒤 “방심할 수 없는 예측불가능한 상대방을 마주하고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상대방이 던진 요구를 좌절·약화시키거나 양보를 내주고 받으려면 상대방이 내놓은 카드가 과연 ‘신빙성 있는 위협’인지 아닌지 정교하게 식별해야 한다. 협상테이블에 제시된 양국의 주요 관심의제가 나중에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지난 1차 협상에서 미국이 주요 관심목록으로 꺼낸 자동차나 한국이 제기한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이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거나 다른 이슈가 돌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협상은 최종타결 때까지 모든 내용이 미결정의 영역에 놓인 주도면밀한 싸움터다. 앞서 합의한 내용이 다음 협상에서 민감한 새 협상카드의 등장으로 일거에 엎어지거나 뒤집히는 일도 벌어진다.
김현종 본부장은 평소에 “협상전략가는 상대방의 말을 180도 거꾸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에 던질 예측불허의 카드를 항상 깊숙이 감추고 있어야 한다. 협상은 목표 겨냥→준비→발사하는 스타일도 있으나 먼저 발사부터 해놓고 결과를 봐가며 준비하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겨냥하는 방식도 혼용해 써야 한다”고 말한다.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는 “협상테이블은 어차피 엄포용과 진심이 뒤섞여 제시되는 장사치들의 게임판이다. 우리의 요구를 저쪽이 수용하면 그 대가로 더 큰 것을 요구하기 마련이고, 상대방이 요구사항을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한 엄포용 카드가 난무하는 힘의 대결장”이라고 말했다. 우리 통상당국은 미국에 위협이 될 만한 통상이슈를 한보따리 발굴해 실무협상팀에 이미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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