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한 슈퍼마켓 모습. 정은주 기자
지난달 3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한 미용실. 미용 마이스터인 에스마 데미르보(32)는 고객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원래 미용업은 ‘미니잡’(월 450유로 이하를 받는 시간제 일자리) 위주로 운영돼왔지만 2015년 법정 최저임금 도입 이후 정규직으로 많이 바뀌었다.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미니잡 채용을 포기하는 셈이다. 그는 “(최저임금 도입으로 시급이 올라서) 미니잡으로 채용하면 한달 최대 50시간밖에 일을 못 시킨다. 고객들이 원하는 시간에 미용사를 만나기 힘들어지면 결국 고객들이 다른 미용실로 가버린다. 인건비를 좀더 아끼려다 매출이 떨어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의 법정 최저임금은 시급 8.84유로(약 1만1700원, 월 1532유로)인데, 법정 최저임금 도입 전까지만 해도 서비스업종에선 인건비를 아낄 수 있는 미니잡 일자리가 많았다.
국내에서 연초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린 데 따른 사회·경제적 영향에 주목하고 있는 데 견줘, 독일에선 3년 전 법정 최저임금 제도 도입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최저임금 도입 시기나 수준 등에서 두 나라의 사정이 많이 다르지만, 양쪽 모두 저임금 일자리를 줄이고 가계소득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조처를 취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소매업·외식업주 “인건비 늘지만 매장 안정돼 정규직 쓸 터”
독일은 전통적으로 산업별노조와 사업주단체가 정부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임금 및 근로시간 등을 협상해왔다. 하지만 갈수록 단체협약이 포괄하는 노동자 비중이 줄고 2003년 ‘하르츠 개혁’(기간제·파견근로 완화 등 노동시장 개혁조처)으로 저임금 일자리가 급증하면서, 2015년 1월 법정 최저임금이 도입됐다. 법정 최저임금 도입 3년을 맞은 독일 사회는 미니잡과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가 정규직(파트타임 정규직 포함)으로 전환되고 임금격차가 완화된 점을 성과로 꼽는다. 다만 최저임금 영향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는 사업주가 늘어나는 등의 부작용도 겪고 있다.
■ 미니잡 축소가 가장 큰 성과
미니잡은 급여가 월 450유로(약 54만원) 이하인 일자리로, 이들을 고용하는 사업주와 노동자에겐 사회보험료와 소득세 납부 의무를 일부 면제해줬다. 이 때문에 하르츠 개혁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미니잡 일자리는 2014년 6월 기준으로 780만개에 달했다. 독일에서 불안정 일자리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
2016년에 나온 독일 최저임금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최저임금 도입 첫해인 2015년 초 미니잡에서만 일하는 노동자는 한해 전보다 10만명 줄었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5만명)은 사회보험 의무 가입 대상인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특히 최저임금제 도입에 따른 영향이 큰 소매업·외식업에서 미니잡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시급이 7유로일 때는 주당 15시간 일해도 월 420유로를 지급하는 미니잡에 속했지만, 시급이 8.5유로(2015년 기준)로 오르면서 같은 시간 일해도 월 510유로를 줘야 하기 때문에 미니잡이 줄고 그 자리가 정규직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최저임금 도입과 함께 미니잡의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은 그대로 둔 채 휴게시간만 늘려 노동시간을 줄이는 ‘꼼수’를 쓰지 못하도록 노동시간을 기록해 관청에 보고하는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또 연방관세청에는 최저임금 감독기관으로서 모든 관련 문서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면 하청업체에 책임을 묻지 않고 원청업체가 법적 책임을 지는데 벌금이 최대 50만 유로(약 6억7천만원)에 이른다.
프랑크푸르트 갤러리아백화점에서 2016년부터 주얼리 매장을 운영하는 이은주(50·독일 23년 거주)씨도 미니잡 고용을 점차 줄일 계획이다. 그는 처음에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미니잡 4명만 고용해 주 3일씩 나눠서 일을 시켰다가 정규직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는 중이다. 정직원은 주 5일에 하루 5시간 반씩 일하고, 월 1400유로(약 186만원)를 기본급으로 받는다. 실제 급여는 판매액의 2%를 성과급으로 주기 때문에 더 많다. 그는 “정규직 채용 이후로는 매장 운영이 좀더 안정적으로 돌아갔다. 인건비가 다소 늘어나더라도 미니잡을 줄이고 정직원을 더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도입은 동·서독 간 크게 벌어져 있던 임금격차를 줄이는 성과도 남겼다. 제도 도입 전까지만 해도 저임금 노동자(시급 8.5유로 미만) 비중은 동독 지역(20.7%)이 서독 지역(9.3%)에 견줘 두 배나 많았지만 이런 격차가 완만해지고 있다. 동독 지역의 미숙련·반숙련 노동자 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2015년 3분기 기준으로 동·서독 지역 임금을 1년 전과 비교해보면, 동독 지역 미숙련 남성의 시급은 8%, 여성은 8.5% 오른 반면 서독 지역의 경우 남녀 모두 3% 오르는 데 그쳤다.
■ 근로시간 단축·노동강도 강화 부작용도
그렇다고 최저임금 도입이 긍정적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지난달 29일 뉘른부르크에 있는 독일 연방고용공단 산하 고용연구소(IAB)에서 만난 연구원들은 최저임금과 관련한 최근 연구 보고서를 보여줬다. 이 연구소는 독일 최저임금이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전담팀을 따로 두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사업주는 최저임금 도입에 대한 대응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상품값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기업 1만6천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저임금 영향을 받은 기업 4곳 중 1곳이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특정 작업을 짧은 시간에 끝내도록 노동강도를 높였다고 응답했다. 또 최저임금 도입 첫해에 택시비(12.1%), 출판물(5.9%) 등 일부 품목의 물가가 뛰기도 했다. 다만 낮은 에너지 가격 덕분에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 수준에 그쳤다. 이밖에 독일 고용률은 최저임금 도입에도 종전보다 1.4~1.8%포인트 올랐지만 만일 최저임금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일자리가 4만4천~6만8천개 더 늘었을 것이란 추정 분석도 담겼다.
독일 정부도 법정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난제를 안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수는 독일 정부 공식 통계(사업체 조사)로는 110만명(2016년 기준), 독일 경제사회연구소(WSI) 통계(노동자 조사)로는 180만~260만명(2017년 기준)에 이른다. 독일 정부가 관리감독 강화에 나서면서,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1700건(벌금 150만 유로)과 2500건(벌금 420만 유로)의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 법정 최저임금만큼 중요한 복지인프라
독일과 한국에서 모두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해본 한국인 대학생 최한윤(25)씨는 두 나라에서 체감한 실상이 크게 달랐다고 말한다. 워킹 홀리데이로 독일 동부 지역에서 머물고 있는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법정 최저임금을 받고 식당일을 하고 있다. 그는 주당 32.5시간만 일해도 월세(500유로·약 66만원)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집세는 비싸지만) 식료품·생필품 등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 보니 생활을 꾸려갈 만하다. 한국에선 등록금 부담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고 생활 물가도 높아서 최저임금만으로는 지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선 대학 등록금과 학생 교통비가 면제라는 점 때문에 향후 석사과정은 독일에서 이수하고 싶다고 했다.
독일의 법정 최저임금은 1인 가구가 전일제(주당 40시간)로 일할 때 최저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독일에서 만난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법정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절반을 밑돌지만 무상교육과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이 안정적이어서, 최저임금만으로도 생계를 꾸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저임금 노동의 문제는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 교육, 주거, 복지 등 사회적 인프라가 함께 구축돼야 일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는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간접적 지원 정책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뉘른베르크/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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