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3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한 정부 부처 장관들과 여당 인사들은 향후 재정의 적극적 역할 확대에 대한 의견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선 복지지출 확대 등을 위한 안정적 재정 확보를 위해 필요한 증세 등에 대한 언급은 빠져 한계를 보였다는 평이 나온다.
이날 문 대통령은 머리발언에서 “재정은 국가의 정책을 실현하는 수단”이라며 “일자리, 혁신성장을 위한 창업과 중소기업 지원, 보건복지 등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필요한 정책과 사업에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국가의 재정 능력이 한정되어 있으니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과감한 지출 구조조정을 위해 각 부처 장관님께서 적극적으로 협력해달라”고 말했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모여 향후 5년간의 중기적인 재정운용 방향과 계획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다. 지난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의해 초고소득자와 초거대법인에 대한 소득세·법인세 ‘핀셋증세’가 본격 제기된 자리도 국가재정전략회의였다.
이날 문 대통령이 다시 한번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지난 1년간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증가속도가 둔화되고 소득격차가 확대됐다는 통계가 나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근로자의 소득이 증가하고 불평등이 개선됐지만, 고용에서 밀려난 근로빈곤층의 소득은 하락했다”며 “소득 하위계층, 특히 고령층의 소득 감소에 대한 대책을 더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최저임금 외에 소득분배를 개선할 수 있는 더 적극적인 재정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일자리, 저출산, 고령화, 혁신성장 등 모두 적기를 놓치게 되면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재정투입의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한 정부 각료와 여당 대표들도 재정 확대를 주장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고령화와 높은 임시·일용직과 자영업 비중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중기 재정에 대한 판단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다시 설정하는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제3정조위원장인 박광온 의원은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장려금(EITC) 확대나 기초연금 인상 시기를 앞당기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이를 뒷받침할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재원 마련을 위한 세수 확보가 필수적인데도 문 대통령은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요구했을 뿐 향후 증세 계획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재정 확대에 대해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재정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예산의 누수를 막고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예산전달 체계를 효율화해 부정수급을 방지하는 데에 역점을 둬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공개된 정부와 여당 참석자들의 발언 역시 재정의 역할 확대를 강조할 뿐 증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만이 “세수 확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2020년까지 세수가 연간 20조원씩 늘어난 뒤 세수 증가폭이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광온 의원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재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조세 전반에 대해 검토하고 있으니, 그 뒤에 다시 분석하자는 정도에서 그쳤다”고 설명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지출 구조조정은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는 의미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 노인 빈곤이나 청년 일자리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응할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라며 “경제 분야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느껴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영철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물가가 안정돼 있는데 실업이 심각하면 재정 지출을 대폭 늘리는 총수요 확대 정책을 써야 한다는 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얘기”라며 “지출 구조조정으로 다른 예산을 아껴서 다른 쪽에 쓰겠다는 수준으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허승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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