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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운 좋게’ 먹은 아시아나 기내식…4시간 지연엔 해명도 없었다

등록 2018-07-03 11:42수정 2018-07-04 13:26

출장길에 맞닥뜨린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
2일 오후 5시15분 이륙 예정이던 자카르타행 아시아나
1일부터 불거진 기내식 대란 여파로 4시간 늦게 출발
카톡 통해 출발시간 안내만 왔을 뿐 해명·사과 없어
지난 1일 기내식 공급문제로 불거진 아시아나항공의 운항 지연 사태가 확산일로다. 이달 1일부터 기내식 제공업체를 변경하면서 불거진 공급물량 부족 탓이다. 첫날인 1일 아시아나 국제선 항공기 80편 가운데 51편이 1시간 이상 늦게 출발했다. 이틀째인 2일에도 국제선 항공기 75편 대부분이 지연됐으며, 노밀(no meal) 상태로 이륙한 항공기도 다수였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 하겠다”고 회사 쪽은 밝혔지만, 항공기 지연 사태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기내식 때문에 항공기가 운항 차질을 빚는 사태도 드문 일이지만, 문제는 애꿎은 승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장차 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출국하려던 김미영 <이코노미인사이트> 기자도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으로 2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애초 오후 5시15분 OZ761편으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해당 항공기가 연착되면서 4시간여 뒤인 밤 9시20분에야 출국할 수 있었다. 3일 김 기자가 직접 체험한 ‘기내식 대란’ 소식을 전한다.

■ ‘기내식으로 연착 말이 돼?’

‘아니, 뭔 일이래? 천재지변이나 기상악화도 아니고 기내식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는 게 말이 돼?’

1일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 뉴스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2일부터 7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장 때 이용할 항공편으로 아시아나를 이미 예약해둔 상태였다. 2일 오후 5시15분 OZ671편으로 출국해 6일 밤 11시45분(현지시각)에 출발하는 OZ762편으로 귀국하는 일정이다.

‘어쨌든 내일이면 해결되겠지. 며칠씩이나 가겠어?’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오후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여차하면 인도네시아 출장 일정 자체가 꼬일 수 있겠다는 불길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일 오전 9시께 부서 카카오톡방에 ‘하필 아시아나항공을 예약했는데, 제때 출발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기우였을까. 다행히 이날 오전 내내 아시아나항공에서 비행기 출발지연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짐을 싸고, 국내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한 뒤 오후 1시쯤 집을 나섰다. 인천공항까지 교통체증을 감안할 때 1시간30분 남짓 걸리니, 3시쯤 공항에 도착할 것이기에 잠깐 면세점을 둘러볼 시간도 충분하다.

서울 구로동에서 공항버스에 오른 시간은 1시간30분쯤. 관광 목적이 아니더라도 국외 출장은 흔한 경우가 아니어서 매번 긴장 못지않게 설렘과 기대도 크다. ‘잘 다녀오겠다’고 가족과 지인에게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손가락 놀림이 경쾌할 수밖에 없다.

‘카톡왔숑~’

정확히 오후 1시50분.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발신한 친구는 ‘아시아나항공’.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아시아나항공입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변경되어 안내드립니다. 항공기 연결사정으로 오후 17시15분 비행기가 19시50분에 출발합니다.”

진즉에 알려줄 것이지! 그러면 집에서 2시간여를 더 보낸 뒤 공항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하필 공항버스에 타고 있을 때, 알려줄 게 뭐람. 이륙시간이 어느 정도 지연된다는 것쯤을 항공사는 사전에 알고 있었을 텐데, 공지라도 빨리 해줬더라면 좋았을 걸.’ 공항버스에 몸을 실은 이상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현지 도착시간이 늦어지긴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 싶었다.

■ 뒤늦은 출발지연 메시지…보상은 1만원 식음료 쿠폰

오후 3시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아시아나 카운터로 이동해 짐을 부치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아시아나 직원이 보딩패스와 함께 다른 쿠폰을 하나 더 줬다. “공항 내에 있는 식음료점에서 사용가능합니다. 비행기 이륙이 늦어져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서비스면 1~2시간 연착은 ‘여유롭게 면세점 쇼핑을 할 수 있으니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출국심사를 하자마자 수화물을 부치면서 받은 1만원짜리 쿠폰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했다. 1시간여쯤 돌아다녔을까. 슬슬 면세점 구경을 하는 것도 이력이 날 즈음인 오후 5시53분, 또다시 카톡이 울렸다. 발신 친구는 아시아나항공. 메시지는 4시간여 전과 마찬가지로 ‘항공기 출발시간이 항공기 연결사정으로 21시20분으로 변경된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연착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줄 아시아나직원은 탑승구를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로 기내식 때문인가? 기내식 때문이라면 기내식 준비 때문에 출발이 늦어지는지, 혹여 기내식이 없다면 공항에서 요기라도 간단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 그것보다 비행기 지연으로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새벽에 도착하면 호텔까지 어떻게 이동해야 하나 등등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녁 8시가 되어가니, 더 이상 돌아다닐 기력조차 바닥이 났다. 탑승구인 39번 게이트 쪽으로 가서 탑승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탑승구 쪽으로 가면서 30~40번대(아시아나 항공기 이륙하는 탑승구들)의 주변 게이트들을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아시아나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는 수십 명의 승객들도 보였다. 공항에서의 기약 없는 기다림에 다들 지친 모습이었으며, 표정에서는 당혹함과 함께 짜증이 묻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박정곤(47·경북 김천) 씨는 “회사 직원 12명이 인도네시아 치카랑에 있는 현지공장을 둘러볼 예정이었다”며 “해명이나 사과는커녕 ‘회사 쪽으로부터 전달받은 게 없다’며 승객들의 불편이나 피해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강아무개(48·회사원) 씨는 “항공기가 4시간 이상 지연되면 운임의 20%를 배상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승객들에게는 공지조차 안하고 있다”며 “경영진의 판단 착오로 아시아나 직원들과 승객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직원들이 이렇게 수습할 게 아니라 경영진들이 나서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저녁 8시께 물과 음료 등이 제공됐지만…

8시. 39번 탑승구 앞에 테이블이 놓였다. 직원들이 그 위에 물, 콜라, 카스타드, 팜로드 등의 음료와 과자 등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비행기 이륙을 기다리는 승객들을 위한 간식이다. 다들 피곤하고 지쳐서 당이 당겼는지, 간식이 테이블에 놓이기가 무섭게 이내 사라졌다. 평소 같으면 나 역시 허겁지겁 가져다 먹었을 텐데, 도통 입맛이 없다. 입이 쩍쩍 마르고 갈증만 올라올 뿐이어서, 생수만 2통 벌컥벌컥 들이켰다.

탑승구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비행기가 4시간 넘게 연착됐다. 연착 때문에 환승, 현지에서의 이동 문제가 생긴 승객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직원한테서는 그 어떤 확답도 듣지 못했다. “명쾌하게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중에라도 문의를 하고 싶다면 고객만족팀에 연락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정말 승객을 호구로 아는 건가!

그럼에도 이날 39번 탑승구 앞에서는 적어도 큰 소리로 문제를 제기하는 승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어차피 탑승구에 있는 직원들이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직원들이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도 아닐뿐더러 어찌 보면 이들 역시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식사도 거르면서 승객들의 항의를 몸소 받아내고 있는 피해자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대한항공의 갑질 논란으로 호기를 맞은 아시아나항공이 그 기회를 스스로 박차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실제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찾아본 <네이버> 댓글에는 “아시아나항공 잘되라고 떠먹여줘도 발로 차버리네.”(1004****), “아시아나는 대한항공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andd****), “기내식도 관리 못하는 항공사가 비행기는 어찌 관리하나? 저런 항공사 비행기를 불안해서 어찌 타나? 항공사 면허 반납하고 길거리 리어카나 끌어라.”(inch****) 등의 글이 수천 건 올라와 있었다.

■ 21시20분 이륙, 기내식 2번 제대로 나와

8시50분, 예정된 비행기 탑승 시각이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잠시도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또 언제 ‘카톡’ 메시지가 올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세 번째 카톡은 오지 않았다. 급히 자카르타 현지에서 섭외한 렌터카 이용시간을 조정하고, 호텔에도 새벽에 체크인 할 것이라고 연락을 취했다. 비행기 탑승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더 늦어지지 않고 출발해서 다행이라고 위안삼기로 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더 이상의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핸드폰 전원을 끄기 위해 초기화면을 보니, 1만3천보 이상으로 찍혀 있다. 공항에서만 1만보를 걸은 셈이다. 낮 동안 너무 긴장하고 피곤해서였을까. 비행기를 타자마자 나도 모르게 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1시간 후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더니 기내식이 제공되고 있었다. 메뉴는 비빔밥과 치킨덮밥. 비행시간이 7시간에 이르는 OZ761편은 운 좋게 ‘노밀’이 아니었다.

“비빔밥 주세요!” 햇반, 김치, 북엇국, 과일이 함께 나왔다. 과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스턴트처럼 포장된 제품이었다. 기내식 대란으로 급히 인스턴트로 대체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이렇게 제공됐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기내식이 나온 시각은 한국시각으로 밤 11시. 허겁지겁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또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3~4시간을 내리 잠에 취해 있었던 셈이다. 다시 잠에서 깬 건 자카르타 공항 도착 한 시간(한국시각 새벽 3시30분)을 앞두고 두 번째 기내식인 치킨브리또와 음료가 제공될 때였다. 내가 탄 비행기는 기내식 제공엔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역시, ‘뭐니 해도 항공기 탑승에서 기내식이 빠지는 건 ‘앙꼬 없는 찐빵’이다.’

새벽 2시40분(현지시각, 한국시각 4시40분). 드디어 비행기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수하물을 찾는 과정이나 입국심사 역시 순조롭게 진행됐다.

■ 아시아나의 부실한 대응 비판 받아야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상 초유의 기내식 대란을 일으킨 아시아나의 부실한 대응이다. 기내식 대란이 7월 이전부터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었음에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이런 불상사를 야기한 아시아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 사태가 불거진 3일 동안 승객들을 배려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행기 출발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한 아시아나 쪽의 해명과 사과가 소극적인 것이 그 방증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도록 대응 매뉴얼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하는 것을 볼 때, 당장 귀국 항공편인 OZ762(6일 자카르타 출발)를 제때 탑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심지어 7월은 본격적으로 휴가 시즌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항공편의 무더기 지연은 일정 차질은 물론이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태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결국 골탕 먹는 건 애꿎은 승객들뿐이다.

지금 바람은 아시나아 기내식 대란이 하루속히 해결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렁이 담 넘듯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일은 승무원들이 인천공항 등의 현장에서 지엽적으로 사과하고 즉흥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급식업체 변경을 둘러싼 갑질 논란, 급식업체 협력업체 대표의 자살 등 갖가지 잡음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상황인 만큼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이나 금호아시아나그룹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민들의 분노와 원성이 점점 커지는 데는 지금껏 경영진들이 사태 수습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실제 이번 사태의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재발방지 차원에서라도 소비자들을 모아 ‘집단소송’ 등의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는 이유다.

자카르타/글·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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