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유플러스가 요금제와 결합한 ‘넷플릭스 3개월 무제한 이용 이벤트’를 벌이는 모습. 엘지유플러스 블로그 갈무리
2년 전 이맘때 서울 여의도의 한 특급 호텔에서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을 기념하는 ‘미디어 데이’ 행사가 열렸습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넷플릭스가 만든 텔레비전 시리즈 출연진을 앞세운 행사는 3일 동안 이어졌고, 같은 기간 호텔의 5개 층이 이 행사를 위해서만 사용됐다고 해요. 앞서 같은 해 1월 넷플릭스는 한국을 포함해 190개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발표를 했고, 이 행사가 아시아 지역을 대표한다고 해도 꽤 성대한 규모였던 거죠.
2년 사이 넷플릭스 전세계 가입자 수는 8000만명에서 1억2500만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월 단위 유료 서비스인 넷플릭스는 가입자의 증가가 곧 매출 증대를 의미합니다. 미국에서 출발한 만큼 미국 가입자(5670만명)가 가장 많지만, 증가 폭으로 보면 최근 넷플릭스의 성장을 이끄는 건 글로벌 가입자들입니다. 최근 분기별 글로벌 가입자는 500만~600만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좀 다릅니다. 넷플릭스가 수치를 발표하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넷플릭스의 한국 가입자 규모를 20만~30만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을 평가할 때 자주 등장한 말이 ‘찻잔 속의 태풍’이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유재석·안재욱·이광수 등이 출연하는 예능 <범인은 바로 너> 등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는 했지만, 대규모 유료 가입자 확보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국내 콘텐츠·플랫폼 사업자들은 넷플릭스의 행보에 꾸준히 촉각을 곤두세웠는데요. 최근 이동통신·아이피티브이(IPTV) 사업자인 엘지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제휴에 나서면서, 견제 수위도 한층 높아지고 있습니다. 두 회사의 제휴설에 대해 한국방송협회는 “국내 미디어산업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강력 비판하고 나섰고, 지상파 4사 사장단도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이효성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넷플릭스 등 글로벌 사업자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요청했습니다.
사업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회사 하나가 업계 전체를 뒤흔드는 사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넷플릭스만 빼면요.” 할리우드의 유명 에이전시 업체 임원이 한 말입니다. 지난달 발표된 디즈니의 21세기폭스 인수 합의, 에이티앤티(미국 2위 통신업체)의 타임워너 인수 등 최근 미국 미디어업계의 격변은 넷플릭스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됩니다. 넷플릭스는 2013년 선보인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부터 두 개 시즌에 약 1억 달러(1100억원)를 투자해 화제를 모았고, 올해만 약 80억 달러(9조원)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비로 투자할 계획입니다. (한국은 곧 공개될 20부작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총 제작비가 300억원 규모로 역대 최고치입니다. 지상파·아이피티브이 등 방송사업자 모두의 연매출을 모아봐야 16조원(2016년 기준) 가량 규모이고요.)
그동안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건 ‘가성비’와 콘텐츠 다양성, 접근성 측면에서 모두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케이블방송 요금이 비싸 시청자들이 ‘가성비’를 고려해 넷플릭스로 갈아타기 쉬웠지만, 한국은 이미 케이블방송 요금이 저렴하고 아이피티브이도 인터넷, 통신 상품과 결합돼 저렴합니다. 콘텐츠 다양성과 접근성이 부족한 이유는 지상파 3사 등 국내 콘텐츠·플랫폼 사업자 다수가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엘지유플러스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와 결합한 ‘넷플릭스 3개월 무료 이용권’ 이벤트 제휴에 이어, 아이피티브이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엘지유플러스를 교두보로 엘지유플러스와 경쟁관계인 케이티, 에스케이브로드밴드와 제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내 이용자들은 자주 쓰는 플랫폼에서 넷플릭스를 편리하고 싸게 이용할 기회가 늘어나는 거죠. 넷플릭스와 엘지유플러스의 제휴가 그동안 국내 주요 사업자들이 넷플릭스를 묶어둔 ‘빗장’을 푸는 위험한 일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넷플릭스는 10여년 전 미국 메이저 콘텐츠 사업자들의 견제를 중소 규모 사업자들과 제휴로 돌파한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시청자의 선택입니다.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으로는 ‘드라마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한 번에 몰아보고 싶다’는 등 시청자 경험을 우선시한 혁신이 자주 꼽힙니다. 한국 시청자에 맞춤한 넷플릭스의 ‘구애’도 더 강력해질 겁니다. 넷플릭스는 영화 <옥자>에 한국 영화 사상 최대 금액인 60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인기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가 참여하는 6부작 드라마 <킹덤>(제작사 에이스토리)에도 회당 15~20억원 총 100억원 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러한 투자도 한국 드라마 제작에서는 최고 수준에 해당합니다.
“더 많은 콘텐츠는 더 많은 시청을, 더 많은 시청은 더 많은 구독을, 더 많은 구독은 더 큰 매출을, 더 큰 매출은 더 많은 콘텐츠를 가능하게 합니다.” 넷플릭스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 테드 사란도스의 말입니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넷플릭스의 국내 성공 여부는 여러분 한분한분의 선택으로 결정됩니다.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 매거진 <비>(B)의 넷플릭스편, ‘뤽의 이바닥뉘우스’가 번역한 미 언론 벌쳐(Vulture)의 기사 ‘어떻게 넷플릭스는 티브이 업계를 집어삼키고 있는가’를 참조·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