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후 경기 성남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정책발표 행사 뒤 인공지능을 이용한 골연령 분석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본격적인 규제개혁 드라이브에 나섰다. 지난 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매달 규제혁신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규제개혁의 속도를 높이겠다고 천명했다. 추진 방식도 파격적이다. 한달에 한번씩, 하나의 핵심주제를 두고 집중적으로 논의해 신속하게 매듭짓겠다는 다짐이다.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며 내세웠던 ’단골메뉴’다. 친기업(비즈니스 프렌들리)을 내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시절 “대불공단 커브길 옆 전봇대 때문에 대형 트레일러 운행이 어렵다”고 지적해, 이른바 ‘전봇대 규제’라는 말을 회자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7시간에 걸친 마라톤 규제개혁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또 규제를 ‘손톱 밑 가시’ ‘암덩어리’ 등에 비유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문 대통령의 규제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강조한다. 문 대통령은 ‘사람중심 경제’의 비전을 천명하며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3대 핵심정책으로 제시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규제개혁에 반대한다면 혁신성장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규제개혁에 성공하려면 몇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우선 규제완화의 명분이 분명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지난달말 규제혁신점검회의를 취소하기 직전 사전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핵심이슈로 꼽은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정보통신(IT) 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 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지분 보유한도를 현재의 4%에서 34%나 50%로 완화 여부 논의 중”이라고만 적혀있다. 개혁진보진영에서 우려하는 산업자본의 ‘사금고화’ 위험성에 대해서는 “보완장치 마련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만 언급됐다. 또 다른 핵심이슈인 개인정보보호 완화도 마찬가지다.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부작용과 관련해 “책임성 강화 등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개인정보 이용을 촉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만 적었다.
이를 두고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규제완화를 하면 기업의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얘기할 뿐, 규제완화의 이유, 효과, 부작용 방지대책에 대해 자세히 밝힌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사금고화 방지를 위해 가계금융만 취급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개인정보 완화 위험에 대비해 유출 책임자를 엄벌하는 조항을 넣는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규제개혁이 ‘규제완화’와 동일시되는 문제다. 참여연대는 “진정한 규제개혁은 불필요한 규제는 완화·폐지하되, 필요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신설하는 일이 병행돼야 하는데, 현실은 규제완화만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 역시 청와대와 정부의 설명은 차이가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규제혁신 1+4법’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규제프리존법이나 서비스산업활성화법과 달리 규제완화의 주 대상이 기존 산업이 아니라 전략적 신산업, 스타트업 기업, 중소기업 위주여서 대기업 특혜 시비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생명·안전 등을 해칠 수 있는 내용은 제외했다“고 강조했다. 사전적 규제 완화와 사후적 규제 강화를 맞바꾸는 ‘규제 프레임의 대전환’ 내지 ‘규제 빅딜’ 방안에 대해서도 깊이 논의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사전적 규제는 과감히 풀되, 법을 어기는 기업은 엄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사후적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포기하고 과거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개혁진보진영의 우려다. 전성인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은 그냥 해본 소리고, 성장은 역시 재벌과 손잡고 규제완화를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300여명의 지식인들도 최근 기자회견에서 “사회경제개혁을 포기하고 과거 회귀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던 개혁성향의 홍장표 경제수석의 자리에 관료출신인 윤종원 경제수석을 기용한 것도 큰 빌미가 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사람중심경제의 세 바퀴에 비유하며 펄쩍 뛴다.
야당 등 보수진영은 정부의 규제완화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관건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기반인 개혁진보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나아가 정권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촛불시민’의 공감을 얻는 문제다. 개혁진보진영도 원칙적으로 규제개혁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규제완화의 이유, 부작용 방지 대책, 필요한 규제의 강화 병행 방침, 경제 개혁정책의 지속적 추진 의지 등을 제대로 전달한다면 ‘접점’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무엇보다 ‘소통’이 부족했다는 증거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진보의 개혁 조급증’ 비판에 대해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개혁진보진영의 전열 재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개혁 추진은 개혁진보진영이 다시 단합할지, 아니면 갈등 증폭으로 ‘자중지란’으로 이어질지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곽정수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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