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지난달 3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임시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 쪽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3일부터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회계부정과 탈세, 세금 유용, 횡령 등 경총에 제기된 여러 의혹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입니다.
보수 언론 등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와 입장이 다른 민간단체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라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 발언과 연계해 ‘정부가 경총 털기에 나섰다’고 하거나, ‘고용부 출신 부회장(송영중)이 축출된 데 따른 괘씸죄가 적용됐다’고 얘기합니다. 맞는 주장일까요?
지난 7월 초 <한겨레>는 경총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등 회원사 용역 사업(35억원)을 진행하면서 회계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았다는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경총은 이를 인정하고 세금을 내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습니다. 당시 고용부는 경총에 대한 조사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적극적인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경총이 고용부 설립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으로 관리·감독 대상이긴 하지만, 민간단체의 회계 문제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미적지근하던 고용부의 태도는 지난달 중순 <한겨레>의 두 차례 추가 보도로 크게 바뀌었습니다. 경총이 2010년 이후 70억원 어치의 정부용역 사업을 따내 진행했지만, 약속대로 진행하지 않았고 정부 예산인 사업비 일부를 유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영배 전 부회장 등 전·현직 경총 임원들이 사업비 일부를 사적으로 착복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문제의 사업들은 퇴직연금 교육사업(40억원),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업 활용 컨설팅 사업(24억원), 일·학습 병행제 전문 지원기관사업(4억1000만원) 등 총 7개입니다. 경총은 운영비를 세금으로 충당하지 않지만, 정부용역을 따내는 방식으로 사실상 정부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이 규모가 해마다 경총 연간 예산의 10%에 달하는 10억원 안팎에 이릅니다. 사업 발주자이자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고용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서둘러 경총 조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고용부의 경총 조사를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 발언과 연계하는 것은 억지 주장에 가깝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자”고 했지만, 고용부 조사는 지난달 20일 <한겨레> 보도로 이미 예고된 상태였습니다. 당시 박계영 산업인력공단 엔시에스(NCS)센터 원장은 “다음주(8월27일)쯤 고용노동부와 함께 경총에 대한 현장 특별점검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재계에서는 경총이 감시의 사각지대에 오래 방치돼 있어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설명합니다. 경총 주인인 기업들은 경총 사무국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습니다. 경총은 기업들이 낸 회비와 용역비 등을 어떻게 썼는지 십수 년 동안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지만, 어느 기업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용역을 맡긴 정부 역시 경총에 대한 감시 업무를 게을리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사업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도, 고용부나 산업인력공단은 이를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용역 날짜가 이중으로 겹치거나 휴일에 용역을 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담겼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04년부터 경총 상근 부회장을 맡아온 김영배 전 부회장은 위탁받은 정부용역 사업비 일부를 본인 주머니에 챙기는 수준까지 나아갔습니다. 경총의 한 전직 직원은 “김영배 전 부회장 출신 대학인 중앙대 경제학과 출신들이 경총의 성골이었다. 이들이 핵심 보직을 맡아 김 전 부회장을 비호하고 이권을 나눠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경총의 오랜 적폐가 밖으로 드러난 데는 일부 직원들의 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십수 년 동안 내부 적폐를 얘기하지 못하던 직원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용기를 내어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경총 직원은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에 “물타기, 분탕질하는 글을 보면서, 한겨레 기자가 전화 오면 이제 진실을 얘기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네요”라고 적었습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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