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하도급 거래 질서 확립과 연대임금 실현-자동차 산업에서 새 길을 찾다’ 토론회 장면.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성윤모 신임 산업부 장관이 27일 천안의 자동차 부품업체를 방문했다. 장관이 업무 시작 첫날 생산현장을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자동차 부품산업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지난해부터 현대기아차 2차 협력사들이 잇따라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을 신청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위기설이 매출액이 조 단위에 이르는 대형 1차 협력사까지 확산되고 있다.
부품업체들이 무너지면 완성차업체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전체 자동차산업 위기론도 빈말이 아니다. 조선업에 이어 주력산업인 자동차마저 흔들린다면 한국경제도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국내 자동차산업 종사자는 35만명에 달한다. 부양가족까지 합치면 100만명을 훌쩍 넘는다. 지난 7~8월 취업자 증가수가 수천명 수준으로 급감한 이른바 ‘고용쇼크’가 벌어진 데는 자동차의 부진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성 장관은 “한국지엠(GM)의 구조조정과 미래차 시장의 급성장,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등으로 자동차산업이 엄중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부는 위기대책 수립을 위해 이달 초부터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 분석이 필수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예고된 재앙과 같다”며 “그 핵심에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전속거래제와 같은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2차 이하 중소 부품업체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완성차와 1차 협력사가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다는 하소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당한 대가가 없으면 혁신의 유인도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중소 부품업체들은 경쟁력을 높일 여력도, 이유도 상실한 채 저임금과 저생산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부품업체에 한 완성차업체하고만 거래하도록 강요하는 전속거래는 현대판 노예제와 다름없다.
선도업체인 현대기아차의 성장이 멈춘 2014년 이후 중소 부품업체의 경영난은 한계를 맞고 있다. 지난해부터 2차 이하 부품업체들이 완성차와 1차 협력사에 긴급 자금지원이나 기업인수 요청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자만 반응은 싸늘하다. 현대차 2차 협력사인 태광공업의 손정우 전 사장은 “현대차와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는 도움은커녕 납품중단을 무기로 공갈·협박을 했다며 검찰에 고소하고, 경영권까지 뺏어갔다”고 하소연한다.
업계에서는 입을 모아 구조조정 필요성을 제기한다. 미국은 연간 1200만대 생산 규모에 부품업체가 5600개 정도다. 한국은 400여만대로 생산 규모가 3분의 1 수준인데 부품업체 수는 4600여개로 미국과 큰 차이가 없다. 구조조정에 따라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를 위한 실업대책과, 기존 인력을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생산에 필요한 전문인력으로 전환하는 재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반쪽대책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바뀌지 않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설령 정부가 중소 부품업체에 수조원의 국민 혈세를 풀어도 결국 단가인하 등을 통해 대기업과 1차 협력사의 주머니로 흘러갈 게 뻔하다.
완성차업체의 자구노력도 긴요하다. 국내시장의 70%를 장악해 수요독점 체제를 구축한 현대기아차는 부품시장까지 장악했다.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 계열사들의 부품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한다. 현대차 전 임원은 “현대차 계열 부품사들은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해왔다”면서 “경쟁력 없는 부품사는 모두 정리하고 완성차의 경쟁력 제고와 미래차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차업체의 노조도 상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하부영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지난 3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현대차 노조의 30년 투쟁이 사회 양극화를 더 심화시켰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고 반성하며, 대기업 임금은 적게 올리고 중소 부품업체와 비정규직 임금은 많이 올리는 ‘하후상박의 연대임금’을 제안한 바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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