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권 기획재정부 차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혁신성장과 일자리창출 지원방안'과 관련해 관계부처 합동 사전 상세브리핑을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최근의 경기 부진과 고용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결국 ‘즉효약’인 사회간접자본(SOC) 카드를 꺼내들었다.
24일 정부가 발표한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을 보면, 정부는 공공투자를 확대하겠다며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큰 광역권 교통·물류 기반 등 국가균형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사업들을 선정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미 예타가 진행중인 사업들의 경우에도 티에프(TF) 논의를 통해 선정돼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에 반영된다면, 조사 결과에 관계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는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낙후 접경지역 개발을 위해 효용성이 낮은 접경지역 내 군사보호구역을 연내 해제하고, 낙후지역 개발 시 부담금 감면 대상을 기존 체육·공원시설에서 산업·물류·관광단지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노후 상수도 정비 지원 대상을 현재 군에서 시 지역까지 확대하는 계획을 2021년에서 2019년으로 앞당기고, 특히 군산, 거제 등 산업·고용위기지역에 우선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주거, 환경·안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주요 공공기관 투자도 올해 17조9천억원에서 내년 26조1천억원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지난 8월만 하더라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회에서 “고용이 많이 느는 에스오시 사업이나 부동산 경기부양에 유혹을 느껴도 참고 있다”고 말하는 등 에스오시와 거리를 두던 문재인 정부가 대대적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에스오시 투자가 즉시 고용을 늘리고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입증된 카드이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재정 지출 시 건설업 파급효과 비교 분석’ 자료를 보면, 건설부문의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당 13.9명으로 전산업 평균 대비 1.08배 크고, 노동소득분배율(0.89)은 전산업 평균 대비 1.58배, 후방연쇄효과(1.18)는 1.25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제2영동고속도로, 인천 지하철 2호선 등 광역경제권 30대 프로젝트를 선정해 지역균형발전 명목으로 예타를 면제했다.
현재 굵직굵직한 대형 에스오시 사업들 상당수가 예타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이들 사업의 예타가 면제된다면 에스오시 건설 투자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총사업비 3조2천억원 규모의 평택~오송 고속철도 복복선화 사업이나, 총사업비 5조3천억원 규모의 남부내륙철도 등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편익/비용)이 나오지 않아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상황이다. 국가재정법은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비가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지만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에 대해서는 이를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문제는 관계기관과 지자체 협의를 거쳐 적절한 에스오시 사업들을 선별하겠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고용 침체와 경기 부진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에서 타당성 없는 에스오시 건설이 경기 부양을 위해 우후죽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대형 에스오시나 신규사업들은 예타가 면제된다 하더라도 실제 예산이 투입돼 착공되기까지는 길게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타당성이 부족하더라도 신속히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 위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도 “사업별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업도 있지만, 이미 준비가 끝났고 예타만 해결되면 바로 착수 가능한 사업도 많다”며 “신속히 추진 가능한 사업들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정말 필요한 에스오시는 당연히 해야 되지만, 경기를 부양하려고 필요하지도 않은 도로를 지어서 재정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지속가능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늘리거나, 아니면 저소득층을 직접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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