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빌딩에서 긴급기자회견을 마치고 황급하게 자리를 벗어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유튜브 폭로’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2017년 적자국채 발행, 지난해 3월 케이티앤지(KT&G) 사장 교체 시도와 관련해 기재부 안에서 진행됐던 일련의 일들을 공개했지만, 기재부는 정상적인 업무수행 과정이었다며 조목조목 반박한다. 이후 여·야 정쟁사안으로 번졌고, 폭로를 공익제보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팽팽히 맞서는 주요 쟁점들을 정리했다.
①초과 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에서 초과 세수가 발생하고 이것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게 맞지 않다는 고민이 청와대 내부에서 공유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자국채를 통해 (세계)잉여금을 쌓고 추경(추가경정예산) 등으로 다시 주요 정책에 활용하는게 맞지 않느냐는 구상을 했던 게 사실이다. 다만 이런저런 우려도 있어서 실행하지 않았을 뿐이다.”
2017년 ‘적자국채 발행을 둘러싼 기재부와 청와대의 갈등’과 관련해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을 이끌던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차영환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현 국무조정실 2차장)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차 전 비서관은 총리 공보실을 통해 “당시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히면서 재정이 경기에 긴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경기상황을 고려해 국채를 추가 발행함으로써 재정여력을 확보하자는 의견이 (청와대에)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수가 예상보다 많은 상황에서 일정 부분은 국채발행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적자국채 추가 발행은 ‘초과 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기재부는 2017년 세수가 242조3천억원이 들어올 것으로 전망했지만, 실제 국세수입은 265조4천억원으로 23조1천억원이나 더 걷혔다. 2017년 7월 11조원 규모 추경을 편성했지만 여전히 세수가 남아 돌았다.
기재부 내부에서부터 의견이 엇갈렸다. 신 전 사무관을 포함한 기재부 국고국은 세수가 남았으니 국채 발행을 줄여야 한다는 쪽이었다. 국회는 2017년 예산에서 28조7천억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정했지만, 그해 10월까지 20조원만 발행돼 8조7천억원까지 추가 발행이 가능했다. 국고국은 초과 세수가 났는데 이자를 내면서 더 발행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주장했지만, 경제정책국은 2018년 경기 둔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실탄(자금)’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맞섰다. 적자국채를 발행해 세계잉여금(남은 예산)이 커지면 연초에 추경이 손쉽다는 속셈도 깔려 있었다.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정책국의 손을 들어주며, 국고국에 적자국채 발행 검토를 지시했다.
청와대는 초과 세수에 따른 긴축재정을 크게 우려하는 상황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예측보다 세수가 더 걷히면 좋아 보이지만, 정부의 살림살이는 오히려 그 반대다. 정부가 계획보다 더 많이 돈을 거둬들인 만큼 납세자(국민)의 살림살이는 팍팍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기재부의 세수예측 실패 탓에 긴축재정을 펼친 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예산안을 설명하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초과세수가 20조원이 넘었는데, 늘어난 국세 수입을 경기회복을 위해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초과세수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정부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한쪽 당사자였던 신 전 사무관의 시각에서는 다른 쪽 의견을 수용하기 어려웠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정책은 이같이 청와대는 물론 당, 국회와 협의하며 보완될 수 있다.
②적자국채 추가 발행을 왜 하지 않았나
2017년 11월14일 ‘8조7천억원 적자국채 발행 검토’라는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국고국은 바빠졌다. 다음날(15일)로 예정됐던 1조원 규모의 국고채 조기매입(바이백)을 취소했다. 바이백을 하게 되면 국고채를 1조원 추가 발행해야 하는데, 적자국채(8조7천억원)와 기존 예정된 물량까지 더하면 연말에 무려 14조원 가까운 국고채를 쏟아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에서 이를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국고국은 ‘제12차 국고국 매입’을 취소한다는 공지를 띄웠다. 채권시장 마감이 10분도 채 남지 않은 오후 3시20분께였다. 채권시장은 혼란에 빠졌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211%로 치솟았다. 2015년 1월5일 이후 최고치였다. 다행히 급등세는 금새 잦아들어 정부가 바이백을 취소한 다음날인 15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170%로 떨어졌다.
한바탕 소동을 거친 뒤 국고국은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다시 제시했다. 초과세수 상황에서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깨졌을 때 금융시장이 입을 타격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초과세수가 나면 적자국채 발행을 한도보다 줄이는 게 관행이었고, 2014년 이후 적자국채가 국회에서 정한 규모 그대로 발행된 사례도 없었다. 금융시장 상황을 설명하자 김 부총리가 이를 수용했고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청와대는 적자국채 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2017년 기재부가 12월에 적자부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차영환 당시 비서관이 문제제기를 했다. 차 전 비서관은 “청와대는 정부 정책에 최종 책임을 지는 곳이며, 경제정책비서관은 경제정책을 판단하고 (행정부 간) 이견이 있을 경우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도 “청와대가 얼마든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이를 전화로도, 만나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당시 금융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기재부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역시 12월에 적자국채를 대거 발행했을 때 채권시장에서 이를 수용하기 어렵고 정부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자국채를 더 찍지 않은 탓에 이듬해 추경은 3조9천억원 규모 ‘미니 추경’에 그쳤다. 확장적 재정운영을 펼치려던 청와대 계획과는 동떨어진 행보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적자국채를 최대한 많이 발행하려 했다면 채권시장이 이를 예측할 수 있도록 정확한 메시지를 미리미리 내보내야 했다. 예고했던 바이백을 하루 전에 취소하고 12월에 적자국채를 10조원 넘게 발행하는 방식으로는 채권시장의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 과거 정부와 달리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치겠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는데 소홀한 탓에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3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유튜브를 통해 제기한 '청와대의 민간기업 사장 교체 개입' 의혹 등에 대해 입장을 밝히러 들어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③2017년 국가채무 비율 높이려 했나
신 전 사무관은 적자국채 발행을 둘러싼 기재부 안팎의 충돌 이유로 2017년 국민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을 조정하려는 ‘정무적 판단’을 들었다. 2017년도 국가채무 비율을 높여야 향후 문재인 정권이 기저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판단해 적자국채 추가 발행을 밀어부쳤다는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이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조규홍 전 기재부 재정관리관(현 유럽부흥개발은행 이사)이 “핵심은 (20)17년 국가채무 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기재부는 이를 전면 부인한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4조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했어도 국가채무 비율은 38.3%에서 38.5%로 0.2%포인트 높아지는데 그친다. 둘째 2017년 국가채무 비율은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그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채무 비율로 보는 게 타당한다. 셋째 2017년 11월15일 바이백 1조원 취소는 국가채무 비율과 관련없다. 새로운 빚(국고채)를 내서 기존 빚을 갚는 방식이어서 잔액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정부 재정 정책이 ‘건전성 신화’에 발목이 잡혀 있으면 적극적 구실을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견줘 크게 낮은 수준이라서, 오이시디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적극적 재정 정책을 권고해왔다. 하지만 과거 정부는 ‘채무 강박증’ 탓에 재정 지출에 소극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기재부가 국가채무 비율에 매달렸다면, 이런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④민간기업 인사 개입 시도했나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지난해 민간기업 케이티앤지(KT&G)의 사장을 바꾸려 했고, 지시를 받은 기재부가 박근혜 정부 당시 선임된 백복인 사장의 연임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기재부 2차관에 보고했던 ‘케이티앤지 관련 동향 보고’를 들었다. 차관 사무실의 공용 컴퓨터에서 우연히 입수해 언론에 제보했다는 이 문건에는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을 통한 케이티앤지 경영진 교체 시도 내용이 담겨 있다. “실무자가 동향 파악차 작성했고 상부에는 보고되지 않았다”던 당시 기재부 해명은 거짓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기재부는 문건 작성과 보고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인수 관련 금감원 조사가 진행됐고, 백 사장에 대한 검찰 고발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담배사업법상 관리·감독 기관으로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케이티앤지 사장 인사에 영향을 미치려거나, 청와대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신 전 사무관은 해당 부서(출자관리과)가 아니기에, 진전된 재반박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열린 케이티앤지 주주총회에서 기업은행은 실제로 백 사장 연임에 반대했지만, 출석 주주의 76.26%가 연임에 찬성해 교체 시도는 실패했다. 당시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중립을 선언했다. 적어도 정부가 작심하고 사장 교체에 나서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동영상이 공개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⑤신 전 사무관, 공익제보자로 볼 수 있나
신 전 사무관이 ‘공익신고자’인지 여부도 논란의 대상이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잘못을 바로 잡고 공공의 이익을 바로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며 “(공익신고자가) 고발당하고 법적절차를 밟고 사회적으로 안좋게 되면 누가 용기를 내겠느냐”고 호소했다.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의 내용, 신고절차 등을 엄격히 정하고 있다. 공익신고는 “공익침해 행위를 신고하거나 수사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공익침해 행위’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 및 이에 준하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공익침해 행위는 별지에 열거한 284개의 법률의 벌칙 등에 해당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청와대 외압 의혹’은 284개 법률이 규정한 공익침해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신고형식 역시 “조사기관, 수사기관 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7조)해야한다고 제한하고 있어, 신 전 사무관의 ‘유튜브 폭로’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민사회 등에선 법조문 만으로 공익신고자 여부를 가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한다. 박흥식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은 ①조직 내에서 자신이 인지한 위법한 또는 부적절한 행위들로 인해 그 사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나 불이익을 입을 것이라고 인식했는지 ②보통사람의 상식에서 볼때 그러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실질적인 상황·증거가 있는지 등을 충족하는 경우 공인신고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들이 공익제보를 통해 정부기관에서 어떻게 국민에게 불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공익신고자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공익신고 내용의 타당성 여부, 그리고 그 문제제기가 공직사회의 여러 관행을 바꾼다거나 청와대와 정부 간 관계에서 우리가 되새겨 볼 점이 있는가를 파악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주 이경미 선담은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