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타깃(Target) 매장에 설치된 셀프 계산대. 현금, 신용카드, 페이 결제 모두 가능하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행정구역으로 샌타클래라 카운티는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다. 컴퓨터 등 전자산업 기반인 반도체칩을 생산하는 기업들에 이어 애플과 구글까지 가세해 전자·정보통신뿐 아니라 간편결제 시장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4월 초 샌프란시스코를 찾았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거리 곳곳의 여러 매장 입구마다 붙은 페이 사용 안내 스티커였다. 현금과 신용카드가 든 지갑을 갖고 있지 않아도 휴대전화만 있으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스티커 형태는 샌프란시스코 시내 중심가인 유니온스퀘어 주변 뿐만 아니라 서니베일, 마운틴뷰, 새너제이, 팰로앨토 등 지역 매장의 업종이나 규모와 상관없이 모두 똑같았다. 사과 모양이 선명한 애플, 로봇 인형의 구글, 알파벳으로 쓰인 삼성의 ‘PAY’ 문구는 “페이로 신세계를 만나보세요!”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는 “미래 첨단산업이 집약된 이 지역은 다른 도시보다 페이 사용 인구가 많고 페이를 받는 오프라인 매장 수도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운틴뷰에 있는 식료품 매장. 신용카드 외에 애플 페이 결제가 가능하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매장 입구마다 페이 스티커
미국은 전세계에서 확산 중인 간편결제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나라로 꼽힌다. 그럼에도 2014년까지 미국 페이 시장 발전 속도는 더뎠다. 1998년 페이팔(Paypal)이 첫선을 보이고, 구글이 2011년 구글 월렛 등 모바일결제 시스템을 출시했으나 소비자한테 외면받았다. 2014년 애플이 애플페이를, 2015년 구글이 구글페이를 출시하면서 판도가 변화했다. 체이스페이, 시티페이 등 은행권까지 간편결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스타벅스와 던킨도너츠, 웬디스, 월마트 등도 쿠폰, 프로모션, 기프트카드 형태로 자체적인 페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추세다.
특히 미국에서는 사용자가 은행 등과 연계해 지인에게 빠르고 간단하게 송금하는 P2P(개인 간) 결제 서비스가 급속하게 발전했다. 벤모(Venmo)는 10~20대 젊은층을 대변하는 또래 문화로 자리잡았다. 전자우편 주소와 휴대전화번호가 등록돼 있으면 계좌번호를 몰라도 벤모를 통해 실시간 이체가 가능하다. 샌프란시스코 중심지 유니온스퀘어에서 만난 지나(21)는 “친구끼리 더치페이(각자 내기)할 때, 벤모만큼 편리한 것이 없다”며 “이걸 모르면 밀레니얼 세대가 아니다”며 웃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페이팔로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유니온스퀘어 인근 자라 매장 매니저 바네사는 2~3년 전부터 페이 사용 고객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보통 10명 중 2~3명꼴로 애플이나 삼성 페이로 결제한다. 인근에 직장을 둔 남성들의 애플페이 사용 빈도가 두드러진다.” 맥도널드, 세이프웨이와 타깃 등 마트에서 애플페이를 즐겨 쓴다는 30대 남성 직장인 에반은 “휴대전화 기종에 따라 페이 결제 종류가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아이폰은 300여 개 대형 오프라인 매장에서 결제할 때 캐시백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에 애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 신용카드, 지갑 없는 간편하고 편리한 일상에 만족한다고 했다.
마운틴뷰에서 만난 20대 대학생 매버릭은 1년 전부터 삼성페이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애플페이 결제 매장이 절대적으로 적어 불편해 일부러 아이폰에서 갤럭시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삼성페이는 마그네틱 방식이어서 미국 전체 상점 85% 이상에서 쓸 수 있다. 반면 애플페이는 전체 매장의 10~15%인 100만여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산호세에 있는 멕시코 식당 자바 후레쉬 입구에 붙어 있는 결제 시스템 안내 스티커. 신용카드 외에 애플 페이 결제가 가능한 곳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모바일 중심 생활 여파
미국 내 간편결제 서비스 시장 확대는 모바일이 일상 속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 주효했다. 미국 딜로이트는 자체 분석 보고서에서 2018년 미국인의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이 85%로 전년 대비 3%포인트 늘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모바일결제 서비스 이용률도 31%로 2017년 29%보다 늘어 스마트폰 결제가 소비자의 새로운 습관이 됐다고 평가했다. 코트라는 2018년 미국 내 모바일 페이먼트 규모가 1192억4900만달러로 2014년(85억1700만달러)보다 13배 급증했다고 자료에서 밝혔다. 2019년에는 1416억7300만달러(약 161조원) 규모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폰 보급 증가, 인터넷 연결 확대, 다양한 서비스 연계, 모바일결제 기술 성장에 힘입은 결과다.
2019년은 미국 페이 시장 발전 속도와 흐름을 가늠하는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온라인을 거점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간편펼제 서비스인 페이팔,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애플·삼성 페이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페이 업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프로그래머 최상훈씨는 이렇게 예측했다. “페이팔은 전세계 2억 명 이상이 쓰고 온라인결제 시장에서 70% 넘게 차지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한 애플과 삼성에 밀려 고전 중이다. 삼성페이를 비롯해, 오프라인 매장과 적극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맺은 페이팔의 선전 여부, 애플과 삼성의 휴대전화 점유율에 따라 판도가 바뀔 수 있다.”
계산대에 놓인 신용카드 인식 단말기에 애플페이, 삼성페이, 구글페이 결제가 가능하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신용카드 소비 걸림돌
미국에서 간편결제가 선보인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시장 확대는 답보 상태다. 현금과 신용카드 사용이 익숙한 분위기가 반영된 탓이다. 도시 외곽에 사는, 가난을 경험한 베이비부머일수록 그 경향이 뚜렷하다. 현금 거래에서 신용카드 결제 단계를 건너뛰어 페이 결제로 재편된 중국과 달리, 미국은 신용카드 결제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팁 문화 역시 간편결제 시스템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레스토랑에서는 15~23%까지 팁을 줘야 하고, 바 등에서는 팁을 포함해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예의(?)로 통한다. 서니베일에 있는 펍에서 만난 바텐더 조셉(47)은 “5~6달러 선에서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는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1~2달러씩 팁을 준다“며 “이런 곳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불편하다. 나이 지긋한 주민이 이곳에서 농구 경기를 보거나, 다트와 포켓볼을 하며 부담없이 여가를 즐겨서 그런지 대부분 현금으로 결제한다”고 말했다.
레스토랑 등에서 페이 결제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 내 10만여 레스토랑에서 앱으로 결제할 수 있는 ‘레벨업’은 예외다. 사용자가 100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모바일로 주문과 결제가 가능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원하는 시간에 주문한 메뉴를 가져갈 수 있다. 애플페이 사용이 가능한 새너제이에 있는 멕시코 식당 ‘자바 프레시’ 지배인은 “우리처럼 팁을 별도로 받지 않는 식당이라면 페이 결제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실제 그런 추세가 반영되고 있다”며 “페이 결제를 도입한 뒤부터 손님도 늘고 매출도 올라갔다”고 말했다.
보안과 분실 우려, 개인정보 보호 인식, 소매업계의 낮은 단말기 채택률 등도 간편결제 확대에 걸림돌이다. 리서치 회사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티지스’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소비자의 40%가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휴대전화에 등록할 때 생길 수 있는 보안 위험을 우려했다. 리버모어아웃렛 등 쇼핑단지에서도 페이와 별개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리암(33)은 “휴대전화를 꺼내 결제하는 것이나, 신용카드를 꺼내 결제하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며 “굳이 휴대전화에 신용카드와 개인정보까지 넣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앤서니(39) ‘어웨이큰 스토리 인스틴트’(Awaken Story Instinct) 대표는 “한국만큼 인터넷 기반과 속도가 빠르지 않은 미국에서 새 (결제) 시스템이 정착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실제 샌프란시스코와 그 인근만 해도 대중교통과 주차장 등에 페이 결제를 위한 단말기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타깃(Target) 매장에서 물건을 산 고객들이 결제를 하고 있다. 현금, 신용카드, 페이 결제 모두 가능하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페이 시장 안정적 성장 기대
미국에서 간편결제 시장 전망은 밝은 편이다. 꾸준한 성장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결제 서비스 회사 TSYS가 발표한 ‘2017 미국 소비자 결제 서비스 스터디’ 보고서를 보면, 미국인 68%가 이미 모바일 월렛에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등록을 마쳤거나 앞으로 그럴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0% 이상이 2년 안에 매장에서 디지털 월렛을 사용할 계획이 있었다. 미국 소매업계의 인식 변화도 낙관하는 근거다. 리서치기관인 BRP는 향후 소매업종의 50% 이상이 1년 이내에 애플페이 등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서는 신용카드와 현금 사용 유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유인책이 필요하다. 업계가 주도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할인과 적립금 등 적극적으로 홍보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 신용카드와 페이 결제 서비스 관련 업체인 엑셀의 크리스 대표는 “간편결제 서비스는 결국 고객 빅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과 신규 서비스 창출 등 업체들에 막대한 부가 수익을 가져다주는 유인책이 될 것”이라며 “업계 차원에서 간편결제에 대한 인식과 소비 습관 개선을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5월호 더보기 http://www.economy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