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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구독경제
#30대 회사원 정민호(가명)씨는 최근 맥주 ‘구독’을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집에서 야식 플래터, 사이드 스낵, 크래프트 맥주 등을 받아먹는 데 드는 비용은 5만5천원이다. 정씨는 “평소 맥주를 즐겨 먹는데, 집으로 돌아와 일상에 지친 하루를 정리하며 혼맥할 때 요긴하다”며 “국내뿐 아니라 다양한 전세계 맥주를 마져보는 소소한 행복을, 굳이 호프집 등에 가야 하는 수고 없이 편하게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40대 주부 김수미(가명)씨는 몇 달 전부터 영양제 배달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 간단한 문진을 통해 뼈, 눈, 혈액순환, 간, 항산화, 면역, 에너지 등 개인 맞춤형 영양제를 추천해주기 때문에 유용하다. 그는 “가족 건강을 위해 영양제를 샀으나, 가끔 잊어버릴 때도 있어 신경 쓰였다”며 “매번 영양제를 고르느라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고, 한 달에 1만원 남짓 가격에 이용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사서 쓰니? 빌리거나 구독해봐
한국에서도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다. 일정 금액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하면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해주는 신개념 유통 경제다.
과거에는 신문·우유·학습지 같은 특정 물품 한 가지를 구매 계약 뒤 정기적으로 배송받는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소비자가 직접 취향에 맞게 선택하거나 공급자가 전문적인 식견으로 골라주는 아이템을 정기적으로 받거나 빌리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쿠팡 등 정기 배송 서비스는 물론 일정액을 내고 일정 기간 마시는 커피와 음료뿐 아니라 맥주, 면도기, 그림, 영양제, 양말, 꽃 등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까지 나왔다. 사람들 소비 철학 변화와 함께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이 가져온 변화다. 정씨와 김씨 사례처럼 맥주, 양말 등 철저하게 취향을 타는 서비스까지 구독경제에 편입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월 1만8천원에 커피 원두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인 ‘빈브라더스’, 월 4900원부터 4만9900원 사이에 다양한 꽃다발을 배송받는 꽃 구독 서비스 ‘꾸까’, 월 5만5천원에 전세계 맥주를 받아 마실 수 있는 ‘벨루가 브루어리’, 월 3만3천원에 새 아티스트 작품을 정기 구독하는 서비스 ‘핀즐’, 맞춤 영양제 정기 구독 서비스 ‘필리’, 9900원에 패션양말 세 켤레를 배송받는 ‘미하이삭스’, 매주 살균 세탁 뒤 손으로 다린 와이셔츠 3~5벌을 5만~7만원대에 배송받는 ‘위클리셔츠’, 아모레퍼시픽 마스크팩을 정기 배송받는 ‘스테디’, 매달 면도기와 면도용품을 8900원에 배송받는 ‘이노쉐이프’와 ‘와이즐리’, 유기농 생리대를 생리 날짜 3일 전에 정기 배송하는 월경 케어 서비스 ‘해피문데이’, 반려동물을 위한 펫푸드 정기 배송 서비스 ‘리치즈박스’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구독경제 시장은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위워크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등 외국과 비교하면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다양한 서비스와 품목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기 배송이나 정액제 멤버십을 아이템으로 한 스타트업이 국내에만 수백 개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최근에는 젤리곰 비누 만들기, 컬러링북, 버블바, 3D 피겨, 나무·가죽 공예, 캘리그래피, 슬라임(점액질 형태 장난감), 방향제 만들기, 레진아트 등 취미 관련 재료를 배달해주는 서비스 ‘하비인더박스’까지 등장했다.
구독경제 단골 메뉴 자동차와 책
넷플릭스, 멜론 등에서 보듯 영화와 음악 등 미디어콘텐츠 시장은 구독경제 서비스를 이끄는 견인차다. 국내에서 구독경제 서비스가 활발한 분야는 자동차와 독서를 꼽을 수 있다.
독서 스트리밍 서비스 ‘밀리의 서재’는 월 9900원으로 전자책을 무제한 읽을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추천 도서를 배달해주는 ‘플라이북’은 성별, 나이, 기분, 관심사 등에 따라 맞춤형 도서를 추천해주는 플라이북 플러스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밖에 전자책업체 리디북스, 인터넷서점 예스24, 교보문고 등도 일정 요금을 내고 이용권을 사서 전자책을 구독하는 서비스를 속속 하고 있다.
게임 역시 구독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2017년 소니가 게임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플레이스테이션 나우’는 플레이스테이션3의 게임 450여 종을 월 19.99달러에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2019년 3월에는 구글의 스트리밍 게임 서비스 ‘스태디아’가 나왔다. 클라우드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로 다운로드 없이 접속만으로 게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쏘카·그린카·타다 등에서 보듯, 자동차는 구독경제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최근에는 자동차 브랜드도 구독경제 서비스에 동참했다. 제네시스가 내놓은 ‘제네시스 스펙트럼’은 월 149만원으로 중형 세단 G70과 준대형 세단 G80, G80스포츠 세 모델을 매월 최대 2회씩 바꿔 탈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차량 구독 서비스를 들여온 에피카는 2018년 11월부터 월 90만~100만원을 내고 BMW 프리미엄 소형차 미니를 구독하는 ‘올 더 타임 미니’를 운영 중이다.
구독경제가 급성장한 배경으로 1인 가구 증가와 온라인 쇼핑으로의 소비 행태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이제는 식료품과 생수는 물론 신선식품까지 인터넷에서 구입한다. 자동차 같은 값비싼 물건을 무리하게 사거나, 책 등을 사서 쌓아두기보다는 적은 돈으로 필요할 때 빌려쓰는 방식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귀차니즘’ 문화가 자리잡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커진 점도 구독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한 축이다. 이런 문화 트렌드가 지속되는 한 구독경제 모델과 상품은 점점 더 확장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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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패션양말을 정기 배송하는 ‘미하이삭스’ 누리집.
맞춤 영양제 정기 구독 서비스 ‘필리’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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