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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화웨이 제재 파장
중국 정보기술(IT)기업 화웨이의 보안 신뢰성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미국 정부가 각국 소통책을 총동원해 보이콧에 나서니 중국 정부가 핵심 부품사들을 불러다 ‘하던 대로 거래하자’고 압박한다. 사이에 낀 기업은 ‘화웨이 역풍’ 영향과 전략을 셈하느라 분주하다. 화웨이와 협력관계이거나 경쟁관계인 국내 기업도 연일 변하는 통상 기상도에 웃음과 울음이 교차한다.
왜 화웨이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폭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중국은 우리의 거대한 경쟁자다. 그들은 세계를 접수하려 한다. 그들은 2025 (제조업)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제조 2025’는 2015년 중국이 첨단 제조업 분야를 육성해 세계 1위를 하겠다며 밝힌 산업 고도화 전략이다. 미국 대통령이 개별 국가의 4년 전 계획을 기억하고 직접 언급하자 업계에서는 ‘미국이 중국 기술 성장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정부와 화웨이의 무역전쟁이 단순 기술 보안 문제가 아니라 세계 첨단 제조업 시장 주도권 싸움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화웨이는 미국 제재 전까지 5세대(5G) 통신망·모바일 스마트폰·데이터센터 등 미래 산업 주요 격전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P30 시리즈 등 가성비 높은 스마트폰을 만들어 애플이 잡지 못한 인도·동남아시아·유럽 시장을 석권했고, 5G 통신장비회사로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기록했다. 전세계 IT회사의 데이터통합관리센터에서도 화웨이 통신장비가 대거 사용됐다. 미국 시장이 화웨이 휴대폰과 통신장비를 보이콧하는 데도 화웨이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여러 IT기업을 거느린 미국은 경쟁자를 제거하는 전략을 바꿨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을 끊어 제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월 화웨이를 비롯한 68개 계열사가 미 상무부 거래제한기업 명단에 오르자, 퀄컴은 ‘스마트폰의 두뇌’라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칩을, 반도체회사 자일링스는 통신망용 프로그래밍 칩(FPGA)을, 구글은 운영체제(OS) 공급을 중단해 화웨이 스마트폰을 사지로 몰았다.
미국은 화웨이가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대체재 개발의 길도 막았다. 화웨이 자체 제작 AP칩 ‘기린’과 라이선스를 체결한 영국 반도체설계회사 ARM이 최근 화웨이와 연을 끊었다. 화웨이 자체 기술력으론 ARM을 대체할 만한 아키텍처(반도체설계구조)를 구현할 수 없다. 화웨이가 자체 개발하겠다는 ‘홍멍’(국제명 아크) OS도 유럽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설상가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던 클라우드 고객사마저 연을 끊었다.
화웨이 논란, 국내 기업 영향은
그러나 미국이 기대하는 것과 달리 ‘화웨이 제재’는 중국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객사와 부품사 상당수가 다국적 기업인 만큼 미국을 비롯한 국제 시장에도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은 화웨이가 2018년 전세계 13만 기업에서 700억달러(약 83조원)를 주고 부품을 사들였으며 이 가운데 110억달러(약 13조원)를 미국 기업에서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2018년 미국 제조업 전체 수출액 5389억 달러의 9% 수준이다.
예상치 못한 보안 변수도 발생할 수 있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구글은 화웨이와 표면상 연을 끊었지만 최근 미 상무부에 “(화웨이 제재에) 석 달 유예기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구글 안드로이드 공용 소스를 토대로 만들어진 화웨이의 새 운영체제가 버그에 취약할 수 있고, 이를 뚫으려는 해커 활동도 더 활발해질 거라고 판단해서다.
격동하는 국제 시장은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제조 분야에서 화웨이와 경쟁관계인 삼성전자 IM(IT&Mobile) 부문에는 단연 호재다. 화웨이가 꽉 잡고 있던 동남아시아와 유럽시장을 나눠 가질 수 있어서다. 이미 일부 사용자는 화웨이 휴대폰이 구글과 연동하지 않을 것을 염려해 단말기를 중고시장에 내놓고 있고 단말기 가격도 수십만원씩 떨어지는 모양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2019∼2020년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량이 각각 1억대씩 수직하락할 거라며 최대 수혜주는 삼성전자가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반면 화웨이에 메모리반도체를 파는 반도체 업계는 침체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사업부도 타격을 입지만 사업구조 자체가 메모리반도체 중심인 SK하이닉스가 더 시름이 깊다. 업계는 SK하이닉스의 화웨이 메모리반도체 매출 비중이 10∼15%, 삼성전자의 화웨이 매출 비중이 5∼10%라고 추정한다.
화웨이에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카메라모듈을 공급하는 삼성전기와 엘지(LG)이노텍, 화면 패널을 공급하는 삼성디스플레이, 엘지디스플레이 등 국내 부품사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된다. 품목별로 집계할 순 없지만 화웨이가 자체 집계한 반도체를 포함한 한국 부품 구매 규모는 연간 5조~7조원에 이르고 최근 12조까지 이르는 것으로 발표된 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이든 반도체든 화웨이가 국내 업체의 ‘큰손’이었던 건 맞다”며 “화웨이가 미국에 진출하지 못하는 건 (국내 부품사에) 큰 변수가 아니었지만 부품사들이 화웨이에 납품 자체를 못한다면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는 엘지유플러스와 국내 IT기업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에 화웨이 장비를 쓴 기업 상당수가 이를 들켰다가 여론 뭇매를 맞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내로라하는 기업 대부분이 화웨이 장비를 쓰지만 대부분 물어보면 ‘폐기했다’는 식으로 나온다”며 “지금 화웨이 장비를 쓴다고 하면 그 자체로 주홍글씨라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업계 “불확실한 문제제기 수용 못 해”
다만 업계에서는 쓰던 화웨이 장비를 빼거나 교체하는 등 적극적 행동엔 나서지 않고 있다. 화웨이가 보안에 취약하다는 트럼프 정부의 잇따른 문제제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트럼프 정부가 제기하는 보안 문제의 핵심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손잡고 데이터 처리장치에 침입해 이른바 ‘뒷문’(백도어)을 설치할 수 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KT와 SK텔레콤은 무선이 아닌 유선망에만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고, 엘지유플러스는 화웨이 장비를 통신 신호 송·수신용으로만 쓰는 무선주파수(RF)중계기에만 공급하고, 데이터 처리를 담당하는 핵심(코어)망과 기간(백본)망엔 넣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통3사 모두 기존에 들여온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IT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못 믿는 게 문제라면 아이폰도 중국에서 만드는데 아이폰에도 백도어가 있겠냐”며 “세계화된 시장에서 더 이상 의미 없는 얘기다. 경영자로서도 사실상 3분의 2 가격을 제시하는 화웨이 장비를 정치적 이유로 물리치긴 어렵다”라고 했다.
국내 화웨이 고객사도 중국 시장 진출을 고려해 화웨이와 연결고리를 유지하려는 분위기다. 중국 합작회사의 내부 인트라넷 망에 화웨이 장비를 쓴 현대자동차는 “차량제품과 관계없다”며 제품을 계속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화웨이 장비로 네트워크망을 만든 한국전력공사도 2019년 말 장비 교체를 앞뒀지만 “경쟁입찰에 화웨이를 배제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정부는 화웨이 통상 이슈에 직접 관여하지 않되 ‘시장경쟁’ 원칙을 지키겠다는 뜻을 보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G 장비를 교체하라는 미국 압박에도 “통신사업자가 어느 장비회사를 선택할지는 그들이 결정해야 할 몫”이라며 버티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중동·유럽·한국 등 우방 국가를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한국 정부가 계속 관망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에서 한 여성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구글을 비롯한 미국 주요 IT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조치에 따라 화웨이와의 일부 사업을 중단했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의 통신 장비 제조업체인 화웨이는 최근 미국 행정부의 제재를 받고 고통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15일 화웨이 사용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를 거래금지 리스트에 올렸다.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사이에 낀 삼성, 엘지, KT,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들은 ‘화웨이 역풍’ 영향과 전략을 셈하느라 분주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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