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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ISDS 폐기를”…7년 전 민주당 지도부가 옳았다

등록 2019-07-06 09:18수정 2019-07-06 10:46

[토요판] 커버스토리
기고/ISDS 어떻게 바꿀 것인가

미국, 나프타에서 ISDS 삭제
EU, “ISDS는 유럽법 위반” 판결
지속가능한 분쟁해결 방안 필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식연구소 ‘공방’, 참여연대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개혁방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정부는 아이에스디에스를 없애거나 대체할 다른 수단을 찾는 구조적인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은주 기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식연구소 ‘공방’, 참여연대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개혁방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정부는 아이에스디에스를 없애거나 대체할 다른 수단을 찾는 구조적인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은주 기자
2012년 2월8일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당 대표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모였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모든 야당 의원 50여명이 10개 항목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며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공개하는 자리였는데, 이들의 요구사항 첫째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폐기였다.

당시 ‘과격한 주장’으로 몰렸던 (그래서 2012년 총선 패배의 원인이라고 민주당이 생각했던) 아이에스디에스 폐기는 현실이 되었다. 그것도 미국에 의해서.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고치는 과정에서 캐나다와의 관계에서는 이 제도를 없애버렸다. 멕시코와는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투자자의 ‘만능열쇠’로 불리는 공정·공평대우 위반을 이유로는 아이에스디에스를 제기할 수 없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시 논란이었던 간접수용 역시 투자분쟁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캐나다와 미국을 상대로 한 아이에스디에스 분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계기였다. 이제 이 제도를 폐기함으로써 미국과 캐나다는 투자분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최근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아이에스디에스 분쟁이 급증하면서 정부는 부랴부랴 대통령훈령을 만들었다. 하지만 분쟁을 발생시키는 구조 자체를 고칠 생각은 못하고 있다. 아이에스디에스는 민간인이 중재하는 사적 분쟁해결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게 국제적 공감대다. 유럽사법재판소는 2018년 유럽연합(EU) 역내국 간의 아이에스디에스를 유럽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판결했고, 유럽연합 회원국은 올해 12월6일까지 역내국 간 투자협정(BIT)을 모두 종료하기로 했다. 유럽의회는 유럽집행위원회(EC)에 좀 더 민주적이고 투명한 투자분쟁해결 제도를 주문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국제투자조약은 아이에스디에스 폐기를 포함한 근본적 개혁이 국제적인 추세다.

아이에스디에스 개혁 논의는 마침 유엔 산하 전문기관(UNCITRAL·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서 2년 전부터 논의해왔다. 우리 정부와 대법원은 지금까지 1억원에 가까운 출장비를 쓰면서 공무원과 판사를 회의 때마다 보내왔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에스디에스가 없으면 큰일 날 것”이라는 미신도, “이 제도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국제기준”이라는 낡은 사고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려는 자가 누구인지, 이들은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이런 행동을 하는지 간파해야 한다.

아이에스디에스라는 이름은 ‘분쟁해결 절차’를 뜻하지만 실제로는 분쟁해결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봐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한 국가는 의무만 지고 아무런 권리가 없다. 아이에스디에스는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할 국가가 의무만 따진다. 이런 일방적인 투자자 보호 정책이 문제다.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고 보호하더라도 국내법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 이제 투자조약에 투자자의 국내법 준수 의무를 명기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의 행위로 영향을 받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투자자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세계에서 투자분쟁을 가장 많이 제기하는 자는 미국 투자자다. 그다음이 네덜란드다. 그럼에도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 아이에스디에스 폐기를 현실화했고, 네덜란드는 2018년 투자조약 모범안을 만들면서 인권, 환경, 노동법과 같은 국내법과 국가 규제를 준수할 의무를 투자자에게 지웠다. 그리고 투자자가 인권 침해를 할 경우 국가는 적절한 조처를 취할 의무를 지도록 했다.

이것보다 더 개혁적인 방안을 우리 정부가 내놓아야 할 때다. 개혁방안의 지침은 외국인 투자자의 수익 보장이나 성장 위주의 경제담론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 지속가능 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돼야 한다. 투자가 한 나라의 사람이나 자원, 문화를 수탈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희섭(커먼즈재단 이사,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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