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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투자자에 유리한 ISDS 뜯어고치자”…국제 논의 급물살

등록 2019-07-06 09:25수정 2019-07-06 10:46

[토요판] 커버스토리
ISDS 개혁 논의

지난해만 71건, 누적은 942건
투자자 손 들어준 결과 더 많아
유엔, 각국에 개혁안 제출 요구

EU “상설 투자법원 만들어야”
미국·일본 “절차만 수정하자”
시민사회는 “전면 폐지해야”
세계 73개국의 300개 이상 시민단체는 지난해 10월30일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서한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보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에서 아이에스디에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시위하는 모습. 국제환경법센터(CIEL) 제공
세계 73개국의 300개 이상 시민단체는 지난해 10월30일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서한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보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에서 아이에스디에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시위하는 모습. 국제환경법센터(CIEL) 제공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아이에스디에스) 개혁’은 최근 몇년 사이에 국제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외국인 투자자의 중재 신청이 해마다 수십건씩 쏟아지면서 100여개 국가가 분쟁에 휘말린 상태다. 더구나 아이에스디에스의 ‘게임의 룰’이 국가에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위원회인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이달 말까지 60개 위원국 정부들에 개혁안을 내놓을 것을 요청한 상태다.

중재인들, 투자자에 기울어져

아이에스디에스는 이미 1960년대부터 투자협정(BIT) 등에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뿐, 실제 1990년 이전까지 세계은행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된 사건은 1건에 그쳤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소련 해체 후 탄생한 신생국가들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힘을 쏟으면서 외국인 투자자와 다국적회사가 늘어나고 분쟁 건수도 덩달아 증가했다. 특히 긴급 경제정책을 펼친 개도국을 중심으로 분쟁 건수가 급증하더니 2011년부터는 해마다 50건을 웃돌고 있다.

지난 4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간한 ‘2019년 세계투자보고서’를 보면, 2018년 발생한 아이에스디에스 사건은 71건이며, 누적 발생 건수(1987~2018년)는 942건에 이른다. 분쟁을 겪은 국가는 2018년 현재 117개나 된다. 아르헨티나(60건)가 가장 많이 제소당했고 스페인(49건), 베네수엘라(47건), 체코(38건) 등이 뒤따른다. 이 보고서는 “투자자-국가 분쟁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실제 건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쟁 결과는 국가와 투자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유리했을까. 현재 알려진 아이에스디에스 사건(942건) 가운데 602건이 종결됐는데 35.7%는 국가에, 28.7%는 투자자에게 유리한 판정이 내려졌다. 2.2%는 어느 쪽에도 유리하지 않게 결정됐다. 합의된 사건은 22.8%이며 나머지 10.6%는 중재신청을 취하했다. 수치상으로는 ‘국가 승소’(35.7%)가 ‘투자자 승소’(28.7%)를 앞지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합의(22.8%)도 투자자의 손을 일부 들어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을 해줬기에 합의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중재판정이 이처럼 투자자에게 유리하다고 보는 이유는 분쟁을 제기하는 투자자가 중재인을 선정하는 이 제도의 특징 때문이다. 중재판정부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투자자와 국가 양쪽이 각각 선정한 2명, 양쪽의 합의로 선정한 1명 등 3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교수, 변호사 등 민간인 전문가들인데, 투자자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린다는 평판이 생기면 중재인으로 다시 선정될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애초에 이 제도 자체가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로지 투자자만 분쟁을 제기할 수 있고, 투자자가 제기하면 국가는 피청구인으로 무조건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로서는 아무리 잘 해결돼봐야 ‘본전’이고 분쟁에서 지면 많게는 수조원의 돈을 투자자에게 물어줘야 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지 않는다?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는 2017년부터 ‘실무작업반’을 구성해 아이에스디에스를 개혁하려는 국제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37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의 모든 위원국이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의 개혁안을 오는 15일까지 사무국에 제출하도록 결의했다. 우리나라도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동안 작업반 회의를 통해 드러난 각국의 입장을 보면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뉜다. 유럽연합(EU)·캐나다·아프리카 국가들은 좀더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쪽이다. 이들 국가는 상설기구를 설립하고 전업 법관을 임명해 중재를 맡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 일본 등의 국가는 현재 아이에스디에스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절차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자는 쪽이다.

가장 의견 충돌이 큰 주제는 상설 투자법원 도입이다.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혹은 투자협정을 맺는 두 나라가 함께 투자법원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는 독립적인 법관이 투자분쟁을 해결하면 공공정책이 기업이나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로부터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유럽연합, 특히 탈원전 정책으로 아이에스디에스 신고식을 혹독히 치른 독일이 투자법원 도입에 적극적이다.

투자법원 도입에 가장 부정적인 쪽은 미국이다. 미국 산업계는 투자법원의 경우 결정권을 가진 법관 선임 권한을 각국 정부만 갖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미국 투자자는 전세계 국가를 상대로 가장 많은 아이에스디에스(174건)를 제기해왔다. 반면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 투자자로부터 분쟁을 제기당한 것은 16건에 그치며, 이 중 한 건도 패소한 적이 없다. 미국으로서는 현재 제도가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 국가들이 공감하는 개혁 주제도 있다. △금융기관 등에서 변호사 비용 등을 지원받고 나중에 판정 결과로 얻은 수익을 나눠 갖는 ‘제3자 비용지원’을 제한하고 △중재인에 대한 윤리규정을 강화해 이해관계 상충 문제를 감독하고 △동일한 분쟁이 여러 협정을 통해 중복해 진행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데는 대부분 찬성한다. △법적 근거가 희박하거나 협정 조건을 준수하지 않은 투자자의 주장을 각하할 수 있게 하고 △분쟁을 제기한 투자자에 대해 국가의 반소를 허용하는 것도 또한 개혁 방안으로 다수의 국가들이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각 개혁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 제출할 개혁안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한이 침해되지 않도록 아이에스디에스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산업부,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며 시민사회 의견도 들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시민사회에서는 아이에스디에스에 대해 폐지 등 좀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식연구소 ‘공방’, 참여연대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개혁방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공공정책 권한을 확보하고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아이에스디에스를 아예 없애거나, 대체할 다른 수단을 찾는 구조적인 개혁안을 제안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에는 세계 73개국의 300개 이상 시민단체가 연합해 아이에스디에스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서한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 보내기도 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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