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 공업평균주가가 3.05%나 폭락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투자자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것은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지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었습니다. 이날 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이자율이 연 1.619%로 2년 만기 국채금리(1.628%)를 밑돌았습니다. 이후 주식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의 장단기 금리차에서 계속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장단기 금리 역전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일까요?
안녕하십니까? 한국은행을 담당하는 정남구입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금융시장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금리의 속성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채권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금리는 돈을 빌릴 때 원금에 덧붙여주는 이자의 비율로, ‘연 몇%’로 표시합니다. 돈을 빌리는 주체의 신용도, 돈을 빌릴 때의 경기 상태, 돈을 빌려 쓰는 기간에 따라 금리는 다르게 정해집니다.
먼저, 돈을 빌리는 주체의 신용도가 높을수록 금리는 낮아집니다. 신용도가 높을수록 빌려준 돈을 떼일 염려가 적기 때문이지요. 소득이 많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기업보다는 국가의 신용도가 높으니까, 국채 이자율은 회사채 이자율보다 낮습니다. 또 선진국의 국채 이자율이 신흥국보다 낮습니다. 또 이자율은 불경기 때보다 호황기에 더 높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들이 활발히 투자를 하니까, 돈을 쓰려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경기가 나빠지면, 자금 수요가 줄어들면서 금리가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돈을 빌려 쓰는 기간이 길수록 금리가 높아집니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돈을 떼일 가능성도 커지는 까닭에, 이를 고려해 이자율을 더 높이 쳐서 받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 경제는 사상 최장의 확장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중 무역갈등으로 기업 설비투자가 부진합니다. 머지않아 호황의 끝이 보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국채금리는 하락세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7월31일 연방기금 금리를 0.25%포인트 낮췄습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5월 초엔 연 2.5%대였는데, 7월 말 2% 밑으로 떨어지면서 급락해 8월29일엔 1.49%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금리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장기금리 쪽이 단기금리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지면 ‘장단기 금리 역전’이 일어납니다. 8월14일의 금리 역전은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2년 만기 국채금리를 밑돈 것입니다만, 이미 한참 전부터 2년 만기,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3개월 만기 국채금리를 밑돌고 있습니다.
만기가 긴 채권의 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미래에 투자자금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것이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이는 경기 침체의 징후로 여겨집니다. 미국 경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1978년 이후 금리 역전이 5차례 발생했는데 평균 22개월 뒤 경기 침체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2007년 6월 장단기 금리가 역전됐고, 1년 뒤 세계 금융위기의 불꽃이 튀었습니다. 최근에는 영국, 캐나다, 스위스, 홍콩 등 다른 나라에서도 금리 역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단기 금리 역전을 두고는 발생 배경이 과거와 다르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채권시장의 이례적인 왜곡 현상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입니다. 투자 자금이 미국 장기 국채로 지나치게 쏠린 것을 말합니다. 미국 연준은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양적완화 정책으로 미국 장기 국채를 대거 사들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기금리가 엄청나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이나 독일 국채는 마이너스여서 미국 국채 수요가 여전히 큽니다. 수요가 커질수록 채권값이 오르고, 반대로 금리는 떨어집니다.
미국 국채의 장단기 금리차(10년 만기 금리-2년 만기 금리)는 8월29일에도 마이너스 상태입니다. 8월28일 한때 -0.042%포인트에 이르렀으나, 29일엔 -0.012%포인트로 줄었습니다. 미-중 무역갈등의 전개 상황에 따라, 크게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정남구 경제팀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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