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이 지난 5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경제 하위법령 개정 방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지난 5일 ‘공정경제 성과 조기창출 방안’을 내놨다. 때를 놓쳤다는 한탄이 많았지만, 이제라도 다시 고삐를 죄는 모습이라면 일말의 기대를 걸 법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태세인 허리케인급 정치 이슈 탓에 이번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또한 만만치 않은 태풍이 될 것이다. 우공이산의 뚝심이 긴요할 터이다. 공정한 사회를 가꾸어나가는 것은 검찰개혁 못지않은, 중요한 과제다.
공정경제 창출 방안의 핵심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다. 공고한 재벌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총수’가 ‘황제’로 군림하는 재벌그룹 지배구조를 정상화하려면 견제와 감시가 필수다. 주주의 권한과 사외이사의 역할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적 조류로는 주주자본주의가 쇠퇴하고 있다지만 우리는 아직 ‘1원1표’의 기본마저 갖추지 못했다. 국민연금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거들었던 게 엊그제 일이다. 사외이사가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것은 뉴스거리도 안 된다.
금융위원회가 5%룰을 개선하기로 한 것은 주주 권익이 재벌 총수의 사익보다 중요하다는, 기본 중 기본을 되살리는 조처다. 기관투자자가 위법 행위를 한 이사의 해임이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을 요구할 경우엔 지분 보유·변동에 따른 공시·보고 의무를 완화하는 게 주요 개선 내용이다. 재벌 총수의 독단 경영을 주주인 기관투자자가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퇴직 임원을 사외이사로 앉히고 그들이 장기 재직하는 것 역시 금지하기로 했다. 오랜 기간 재벌 회사에서 일해온 임원이 퇴직한 뒤 사외이사를 맡아 총수 경영을 견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퇴직 임원이 대개 ‘승진’ 형식으로 또는, 총수의 친인척이 사외이사를 맡을 경우 장기 재직하는 일이 많다. 심한 경우 30~40년씩 사외이사인 감사를 맡기까지 한다. 이들에게 독단 경영 견제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벌써부터 앓는 소리가 나온다. 재벌과 친재벌 언론이 내미는 전가의 보도는 ‘경영권’이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경영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요국 중 배당 성향이 꼴찌 수준인 이 나라에서, 과다한 배당 요구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기업이 연기금의 ‘봉’이 될 것이라고도 하고, ‘연금사회주의’라는 억지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재계에서 민감해하는 것은 임금 분포 현황 공개다. 정부는 기업 규모·업종 등에 따라 성별·나이·학력·근속연수 등을 기준으로 임금의 평균값, 중간값, 상·하위 25% 임금 등을 공표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커지고 노사 갈등이 격화될 소지가 크다고 주장한다. 임금이 공개되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기업은 사업보고서에 임금을 공개한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수, 평균 근속연수와 함께 연간 급여총액 평균이 적시된다. 문제는 이 수치가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점이다. 거액을 받는 미등기 임원까지 포함해 계산하기 때문에 평균 급여는 실제보다 높게 표시된다. 정부 계획대로 임금 분포가 공개될 경우, 재벌 총수의 천문학적 연봉 및 퇴직금에 대한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저임금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재계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앞으로 재벌의 볼멘소리는 야유와 함성으로 번져나갈 것이다. 경기 침체를 거듭 강조하고, 미-중 패권전쟁을 부풀리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어려움과 이에 맞선 애국적 경영을 널리 선전할 것이다. 뒤에서는 이미 정부의 레임덕을 읊조리고 있다. 허리케인급 소용돌이에 문재인 정부의 동력이 소진해가고 있다는 것은, 재벌의 동물적 감각이 이미 감지한 바다. 총선까지 앞두고 있으니, 재벌의 정부 흔들기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정답은 없다. 때로 설득하되 때로는 밀어붙이는 과단성과 용기가 정부에 있어야 한다. 치밀한 전략은 이미 수립돼 있다고 믿고 싶다. 문재인 정부에 주어진 경제개혁을 위한 마지막 기회. 민주시민의 관심과 응원, 질책과 견인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김진철 산업팀장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