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경기만 회복되면 살림살이 나아질까

등록 2019-09-27 19:29수정 2019-09-28 11:35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셋째)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인구정책 티에프(TF)’가 마련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안’을 확정했다. 기획재정부 제공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셋째)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인구정책 티에프(TF)’가 마련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안’을 확정했다. 기획재정부 제공
‘조국 대전’에 온 나라가 정신이 팔린 사이 우리 경제를 둘러싼 각종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수출·투자 부진, 경기 회복 지연, 성장률 전망치 하향 같은 소식들이 어지럽게 전해지는 가운데, 필자가 특히 예민하게 보는 건 우리 경제 장기 저성장의 촉매가 될 수 있는 인구 문제와 관련한 징후들이다.

최근 몇가지 주목할 게 있다. 정부는 지난 18일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계속고용제도’ 도입을 결정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60살 정년 이후에도 고용을 연장하도록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기업이 고령자 재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보겠다는 것이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부처를 망라해 꾸린 ‘인구정책 티에프(TF)’의 첫번째 결과물인데, 사실상 정년 연장 논의의 첫발을 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이달 초 발표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0.04%)였다. 정부는 농수산물 가격 하락 등 일시적 요인이 작용했다지만, 근본 원인은 수요 측면의 가격 인상 압력이 낮아진 데 따른 것이라는 평가가 만만치 않아 디플레이션 리스크도 우려되고 있다. 이런 여파로 향후 물가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대 인플레이션율도 처음으로 1%대로 떨어졌다. 지난 8일엔 올해와 내년의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이 2.5~2.6% 수준으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추정됐다는 한국은행의 발표가 나왔다. 노동과 자본 등 생산 요소를 모두 활용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이룰 수 있는 경제성장률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앞선 세 사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생산과 소비의 주력인 15∼64살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다. 2017년부터 줄어든 생산연령인구는 올해까지는 감소 폭이 미미했다. 하지만 내년에 전체 인구의 0.6%에 이르는 23만명이 줄어드는 것을 시작으로 불과 5년 사이에만 150만명 가까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연령인구 감소 추세가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엘지경제연구원은 “국내 경기의 하향 흐름을 감안할 때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생산에 차질을 주기보다는 소비 둔화 등 수요 측면을 통해 주로 국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생산연령인구 급감이 소비 위축을 통해 경제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은 일본 경제학자 모타니 고스케가 쓴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에 실감 나게 묘사돼 있다. 일본에선 거품이 붕괴한 1990년대 초반까지도 소비가 줄지 않았다. 하지만 1996년에서 2002년 사이에 신차판매대수, 소매판매액, 여객운송량, 주류판매량 등 주요 소비지표들이 차례로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일본 경제는 본격적인 내수 침체의 길로 접어든다. 주목할 대목은 일본의 전후 고도성장 시절이던 1965∼1970년에 이어 최장기간 ‘호경기’로 불렸던 2002∼2007년에도 내수 축소 추세가 반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타니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생산연령인구 감소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주력 소비층인 생산연령인구가 한계점에 도달한 탓에 내수 산업의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매출 감소→가격 하락(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갇혔다는 것이다. 결국 ‘경기 순환’이 아니라 ‘소비인구’가 내수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동력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해법으로 생산연령인구 감소 추세를 조금이라도 둔화시키는 동시에 이들 연령대의 개인 소득·소비 총액을 유지 또는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다. 이런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면 생산성 향상과 기술혁신으로 제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수출을 늘리더라도 내수 축소라는 구조적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본에서 출산 인구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49년, 한국은 1971년이었다. 이는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일본보다 22년 뒤에 소비 정점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그 시점에 맞춰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시작됐다. 일본이 겪었던 ‘경기순환과 상관없는 내수 침체’의 그림자도 닥쳐올 수 있다. 재정·통화정책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경기대응책이나 수출·투자 확대 같은 익숙한 해법을 뛰어넘는 좀 더 큰 틀의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 늦기 전에 소비 여력 총량 유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국민적 토론이 절실하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조국 대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김수헌 경제팀장 minerv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삼성전자 인사 쇄신은 없었다 1.

삼성전자 인사 쇄신은 없었다

‘1년 400잔’ 커피값 새해에 또 오르나…원두 선물 가격 33% 폭등 2.

‘1년 400잔’ 커피값 새해에 또 오르나…원두 선물 가격 33% 폭등

기재부,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에 “유감” “민생 저버려” 3.

기재부,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에 “유감” “민생 저버려”

세종대 교수 4명,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선정 4.

세종대 교수 4명,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선정

삼성, 경영진단실 신설해 이재용 측근 배치…미전실 기능 부활? 5.

삼성, 경영진단실 신설해 이재용 측근 배치…미전실 기능 부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