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원도 산불재난 이후 지역회복을 위한 협력과 재해구호 제도개선 정책포럼’에서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강원도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 재난 뒤 8개월이 지났다. 고성군에서 시작해 3시간 만에 속초시까지 진입한 불길은 하루 만에 진화됐으나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2명이 목숨을 잃었고 13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산림 2800여 헥타르(㏊)도 피해를 입었다. 집과 일터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과거 발생했던 대형 산불이 진화에만 최소 2~3일 걸렸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빨리 진화된 편이다. 발전된 화재 진압 기술뿐 아니라 정부와 관계 부처, 지방자치단체의 발 빠른 대응과 협조도 큰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피해 지원에 나선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빛났다. 전국에서 자원봉사자 3500여명이 모여들었고, 모금된 국민성금은 역대 산불 중 최대 규모인 560억원에 이른다.
초기의 신속한 재난 대응 성과에 견줘 재난 이후의 복구 과정은 어떨까. 강원도 산불처럼 화재, 폭발,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사회재난은 대개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에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이재민에 대한 피해보상과 복구작업도 지연되기 마련이다. 재난 발생 때 국민들이 낸 기부금의 모금과 배분 기준이 모호한 것도 보상과 복구를 늦추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자연재해의 경우 재해구호법에 따라 재해 의연금품을 모금하고 배분한다. 반면 사회재난 때 모금된 기부금은 정당, 종교단체 등 반대급부 없이 모금되는 기부금 형태로 기부금품법을 따르다 보니,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관리·배분할 근거도 없다. 강원도 산불의 경우에도 모금이나 집행에 대한 거버넌스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데다 보상이 개별적이고 단발적으로 이뤄지는 까닭에 보상 방식과 보상액을 두고 주민들 사이에선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화마가 지나간 지역에 오히려 지역갈등의 불씨가 자라는 형편이다. 이번 강원도 산불이 중장기적으로 재난 복지와 지역회복이라는 과제를 안겨준 셈이다.
이런 가운데 현행 재해구호 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11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전국재해구호협회, 문희상·노웅래·홍익표·이양수 의원실과 한겨레신문사, 한림대학교, 강원연구원이 공동주최한 ‘지역회복을 위한 협력과 재해구호 제도개선 정책포럼’이 열렸다.
첫 발제자로 나선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장은 현행 재해구호 제도를 지역사회 재건에 목적을 둔 장기적 구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재해구호법 개정과 관련 예산 확대를 주장했다. 이 소장은 “현행 재해구호법은 단기 구호에 중점을 두고 있고 재난 이후 중장기 관점에서 지역 재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며 “이재민 보상금 수준도 턱없이 낮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재해재난 국민성금의 모금 및 배분 기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고광선 고성군청 실장은 “같은 지역이라도 산불 발생 시기마다 성금 배분액이 크게 차이가 나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고 항의성 민원도 많다”면서 해법으로 성금을 기금화해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토론에 나선 이창길 인천대 교수는 “긴급구호기관을 비롯해 재난 지원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이들 기관에 대한 정부의 충분한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해구호 민관 협력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양용희 서울신학대 교수는 “재해구호 민관 협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 간, 정부 내 협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기업의 경우, 기업 간 재해재난 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기업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난 지역에 전달할 수 있도록 기업 협의체를 조직하거나 재해구호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