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전국 다섯군데 태양광·풍력 발전시설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발생의 주된 원인은 ‘배터리 이상’으로 정부 조사 결과 드러났다. 학계와 연구기관, 국회, 소방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이에스에스 화재사고 조사단’(이하 2차 조사위, 공동단장 김재철 숭실대 교수, 문이연 한국전기안전공사 이사)은 이런 내용의 조사결과를 6일 발표했다. 그러나 배터리 제작사인 삼성에스디아이(SDI)와 엘지(LG)화학은 발표된 화재 원인에 대해 곧바로 반박하고 나선 데 이어 조사위 역시 ‘판정’이 아닌 ‘추정’으로 물러나는 입장을 보이면서 화재 원인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차 조사위는 지난해 10월21일 발생한 경남 하동 화재를 뺀 나머지 네곳의 시스템 운영기록(EMS)에서 ‘배터리 단락’으로 추정되는 저전압 및 이상고온 신호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배터리 단락이란 분리되어야 할 음극과 양극이 연결된 것을 가리킨다. 단락이 생기면 전지에 열이 생겨 발화될 수 있다. 소실된 충남 예산 화재(8월30일) 배터리와 유사한 이력을 가진 배터리를 해체 분석한 결과, 일부 양극 파편이 다른 양극 극판에 점착되고 리튬 석출물도 확인됐다. 강원 평창 화재(9월24일) 배터리에서는 충전 상·하한 전압 범위를 넘는 기록과 배터리 보호동작이 정상 가동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경북 군위(9월29일)와 경남 김해(10월27일) 화재에서는 시시티브이(CCTV)로 배터리에서 연기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 유사 이력 배터리에서도 이상 형태를 발견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특히 예산과 평창, 군위의 화재 이에스에스에 쓰인 배터리는 이전 화재 사건들 이후 70~95%로 줄였던 충전율을 다시 95~100%로 올린 뒤 화재가 발생했다. 다만 안동에서 발생한 화재는 배터리가 발화의 원인이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예산·군위와 평창·김해 화재 배터리의 제작사는 각각 엘지(LG)화학과 삼성에스디아이(SDI)이다.
지난해 10월 발족된 2차 조사위는 학계와 정부 산하 연구기관, 소방청 등의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이훈, 김삼화, 김기선 의원실 보좌관 3명도 참여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각 당이 1차 조사위의 화재 원인 조사가 부실했다며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1차 조사 때와 달랐던 점은 1차 조사 이후 의무화한 시스템·배터리 운영기록(EMS·BMS) 검토가 추가되고, 같은 시기 생산된 같은 모델 배터리를 쓰는 유사 사업장의 기록과 배터리 분석이 포함된 점이다.
김재철 조사단장은 이날 오후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화재현장의 배터리는 화재로 타버려 화학적 분석이 불가능했다. 유사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동일 시기, 동일 모델의 배터리를 분석해 과충전과 과방전, 저전압 등의 이상 징후를 찾아냈다. 이런 터라 화재 원인을 판단하기보다 화재 가능성이 높은 요인을 추정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배터리 제조사들은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삼성에스디아이는 이날 낸 자료에서 ”조사단 조사 결과가 맞다면, 동일한 배터리가 적용된 유사 지역에서도 화재가 발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산업부는 ‘이에스에스 추가 안전대책’을 내놨다. 이에스에스 신규 시설은 기존의 충전율 95~100%에서 옥내 80%, 옥외 90% 제한을 의무화하고 기존 설비들도 동일한 충전율로 내리도록 권고했다. 이로 인해 이에스에스 사업주가 보게 되는 금전적 손해는 전기요금 할인 등을 적용해 보전할 수 있도록 한국전력 할인특례 개선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설비를 옥외로 이전할 땐 비용 일부도 정부가 부담키로 했다. 그러나 제품의 활용(충전율)을 줄이는 안전대책은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임영호 삼성에스디아이 부사장은 ”충전율을 낮추면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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