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 세법개정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홍남기,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 김태년 원내대표.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초고소득자에 한정해 소득세율을 끌어올리기로 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된다. 불로소득인 주식 양도차익에 부과하기로 한 세금은 덜 걷고, 근로·사업소득에서 세금을 더 징수하는 것은 조세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정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원 마련에 관한 종합적인 전략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따른 세수효과 분석 결과를 보면, 증권거래세(2.5%)를 내년부터 2023년까지 두차례에 걸쳐 1.5%로 낮추면 총 2조4천억원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부터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20%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은 1조5천억원의 세수 증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증권거래세는 1년 앞당겨 낮추고 주식 양도차익 과세는 대상을 ‘2천만원 초과’ 수익에서 ‘5천만원 초과’ 수익으로 축소하는 바람에 애초 계획보다 9천억원가량 세수가 덜 걷힐 전망이다.
대신 정부는 코로나19 고통 분담을 명목으로 과세표준 10억원을 초과하는 소득(근로·종합소득세 납세자 상위 0.05%)에 매기는 소득세율을 현행 42%에서 45%로 3%포인트 올리기로 했는데, 이를 통해 늘어나는 세수가 약 9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세수 추산액으로만 보자면 주식 양도차익 과세 후퇴로 줄어든 세금을 초고소득자 소득세 인상으로 메우는 모양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마치 근로자들이 주식거래로 큰돈을 번 사람들 대신 세금을 내주는 모습이 되는데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균형 있는 소득세 체계 개편 논의 없이 최고구간 세율만 원포인트로 올려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번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은 실질적인 재분배 효과가 있는 수준의 증세 규모가 아니고 대상도 매우 제한적이다. 이에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면세자 비중을 축소하는 계획이 담기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의 소득세 최고세율 현황을 보면, 이번 세율 인상으로 한국은 전체 36개 나라 가운데 일본·프랑스·그리스·독일·오스트레일리아(호주)·영국과 함께 공동 7위가 된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 비중은 한국이 38.9%인 반면, 미국 30.7%, 캐나다 17.8%, 오스트레일리아 15.8%, 일본 15.5%, 영국 0.9% 등이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소득세 체계 전반에 걸쳐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고 면세자 비중을 줄여야 제대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고 명분에도 맞다. 최고세율만 올려서는 세수효과에 한계가 있는데다 조세저항도 가져올 수 있다”며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을 증세도 감세도 아닌 세수 중립으로 설계하려다 보니 궁여지책을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은 올해 세법개정안 추진 과정에서 다소 늦게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책적 필요에 따라 고소득층 구간 세율만 미세 조정한 사례가 있어 이번이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식 양도차익 과세 계획 축소는 개인투자자들 반발 여론에 정부가 굽히고 들어간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은 지난 20일 사전브리핑에서 “여러 이유로 상장주식 과세 전면 도입이 어려웠다”며 “소득세 역사상 처음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