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발 경제위기로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맨 영향으로 지난해 소비지출에서 ‘먹고 자는데’ 쓴 돈의 비중은 역대급으로 높아졌다. 이러한 기본적인 생계비 지출 비중이 상승한 반면 문화와 교육 등 자기계발이나 여가 관련 지출 비중은 하락해 삶의 질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이 9일 낸 ‘국민계정으로 살펴본 가계소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가계소비에서 식음료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엥겔지수)은 12.9%로 전년(11.4%)보다 1.5%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2000년(13.3%) 이후 20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임대료와 수도광열비 등 주거비 지출 비중(슈바베지수)도 1.1%포인트 증가한 18.7%로 2006년(18.8%) 이후 14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식음료 지출 비중인 엥겔지수와 주거비 비중인 슈바베지수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대개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 지수들이 지난해 이례적으로 급등한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가계가 불요불급한 소비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연구원은 해석했다. 소득(국민총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2019년 1.7%에서 지난해 0.4%로 하락했는데, 소비(국내소비지출)는 같은 기간 2.8% 증가에서 3.4% 감소로 급반전됐다. 소득 둔화 정도와 비교해 과도한 소비 위축이 발생한 것이다. 항목별 소비지출에서 오락·스포츠 및 문화 비중이 7.4%에서 6.0%로, 교육비가 5.5%에서 4.8%로 하락한데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났다. 가계소비의 질적 하락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엥겔지수 상승에는 ‘밥상 물가’ 급등 영향도 컸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0.5% 오르는데 그쳤지만 식음료는 4.4% 뛰었다. 최근 세계 농산물가격 급등(애그플레이션)으로 수입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있어 앞으로도 엥겔지수를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서는 예상했다.
슈바베지수 급등은 주택매맷값 상승에 따른 전월세 비용 상승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택매매가격지수가 지난해 3.8% 급등해 전월세 시장의 불안정성을 유발하면서 전반적인 주거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2.0% 내렸던 주택전세가격지수는 2020년에는 1.4%(1~11월 평균) 올랐다. 월세통합가격지수도 2019년 1.1% 내림세에서 2020년 11월 0.8% 상승세로 반전됐다.
반면 가계소비 중 의류·신발 구입비 비중은 지난해 0.9%포인트 낮아진 5.2%로,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대면 경제활동 위축으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그럼에도 의식주를 종합한 지출이 가계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7%포인트 상승한 36.8%로, 2005년(37.0%) 이후 15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구원은 가계의 기본 생계비 부담을 완화하고 소비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질 소득 확충을 위해 재정정책의 경기안정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비지표는 이력효과가 매우 강해 낮은 소비 수준이 장기화하면 경제충격이 해소돼도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며 “재정의 조기 집행률 제고와 추가경정예산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통해 고용시장 정상화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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