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밀보다 키가 작아서 ‘앉은뱅이 밀’로 불리는 토종 밀의 이름이 장애인 비하 표현이라며 바꿔달라는 한 인권변호사의 요청에 농촌진흥청이 “시대 변화에 따라 적당한 이름을 찾아 품종명을 바꾸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민간에서 통상적으로 써왔던 이름이지만 사회적으로 장애 인권 감수성이 향상되면서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한 것이다.
인권변호사인 김예원 장애인인권법센터 대표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농촌진흥청에 제기한 ‘앉은뱅이 밀 품종 이름 변경을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라는 건의 글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이 건의 글에서 “앉은뱅이라는 말은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라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귀머거리, 벙어리 이런 말도 같은 의미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앉은뱅이 밀이라는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달라”고 밝혔다.
‘앉은뱅이 밀’은 일반 밀보다 키가 작고 대가 단단한 특징을 가진 한국 토종 밀 가운데 하나다. 키가 큰 밀과 달리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아 많은 수확량을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어 세계적으로 기아 해방에 크게 기여한 유전자원이기도 하다. ‘앉은뱅이 밀’을 통해 밀 품종을 개발한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는 세계 식량 증산에 기여한 공로로 197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 대표의 건의에 농촌진흥청은 ‘앉은뱅이 밀’의 새 이름을 찾기로 결정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번 문제 제기를 통해 문제를 자각하고 내부 논의를 통해 새로운 이름을 찾기로 결정했다. 품종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적당한 이름을 고민하고 취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앉은뱅이 밀’이 새 이름을 찾더라도 입말을 바꾸는데 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태일 국립식량과학원 밀 연구팀장은 “앉은뱅이 밀은 공식 품종명이 아니고 민간에서 널리 쓰이고 자리 잡아온 통칭”이라며 “새 이름을 붙이려면 단순히 공식 품종명을 새로 다는 수준이 아니라 재배농가, 유통망 등이 새 이름을 사용하도록 권고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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