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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법원 “금융회사 탐욕 과도…당국은 제대로 규제못해” 질타

등록 2021-08-31 11:52수정 2021-09-01 08:44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징계취소소송 판결문에서
금융관료가 규제대상인 금융사에 포섭 행태 지적
우리은행 제공
우리은행 제공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취소한 1심 재판부가 금융회사의 과도한 탐욕이 소비자권익을 도외시했고, 이를 제어할 금융당국도 제대로 규제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부당 판매 책임으로 징계를 받았던 손 회장은 ‘상처입은’ 승소를 했고,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정을 강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3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의 손 회장 징계취소소송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회사 규제를 담당하는 고위 관료들의 이른바 ‘규제포획’ 문제가 그 퇴임 후 취업과 연관되어 사회적 문제로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고 지적했다. 규제포획은 규제기관이 규제 대상에 의해 포획되는 현상이다.

재판부는 이어 “금융회사가 예금자 등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도외시한 채, 실적만을 좇거나 경영진이 그 욕망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그 ‘탐욕’에 제동을 걸어 줄 수 있는 실효적인 내부통제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금융당국을 향해서도 “제대로 된 규제가 적시에 실효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거나 사전에 문제를 예방하는 형태의 금융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문제제기가 계속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금융소비자가 대규모로 피해를 보는 금융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금융회사지배구조법령이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이라는 문언을 명확하게 추가한 함의를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소비자 권익을 소홀히하는 금융회사·금융당국의 관행을 질타한 이유는 우리은행이 디엘에프 판매 과정에서 부당한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의 제재 규정이 부실해 징계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령 19조는 금융회사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업무절차, 이사회·준법감시인 역할 등을 포함한 내부기준을 마련하도록 규정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제재하는 조항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금감원이 징계 근거로 삼은 위반사실 5개 가운데 4개는 근거가 부실하다며 징계 결정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형식적으로 법정사항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이더라도 해당부분(법정사항)에 대한 규범이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법정사항의 핵심이 빠져있다면 아무리 외관이나 변죽만 갖춰 형식적으로 포장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법정사항을 흠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1심 판결을 두고 재판부가 법조문의 사전적 의미에 매몰돼 소극적인 판단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을 지낸 백주선 변호사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이 내부통제절차가 잘 작동하기를 기대하고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회사에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라는 것은 준수하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제재 규정이 없어 징계를 못한다는 재판부의 논리는 입법취지를 실현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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