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국내 증시가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11월 말에는 단단하다고 여겨졌던 코스피 2900선을 일시적이나마 하회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코스피는 여전히 7월 기록했던 고점보다 10% 정도 아래에 머물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지수 범위를 소폭이나마 떨어뜨린 상황으로 평가된다.
국내 증시의 위험이 조금 더 커졌다고 보는 것은 증시를 이끄는 기본적인 힘인 경기와 유동성 측면에서 긍정적 에너지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화정책 스탠스의 변화 이후 그나마 증시를 지탱해 왔던 경기 확장 기대가 이번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위협받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수의 국가에서 해외로부터의 입국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적어도 한두 달 간 당초 기대되었던 만큼의 경기 확장은 어렵게 됐다.
더 큰 문제는 물가상승이 잘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1월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3.7%로 2개월 연속 3%를 넘어섰고, 전월비로도 9~10월의 하락세를 멈추고 0.4%로 올라섰다. 그동안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고, 통화 긴축 역시 일반 물가상승보다는 주로 부동산 가격 불안과 급증한 가계대출의 완화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제는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추가 긴축을 정당화할 만한 상황이 됐다. 당연히 재정 지출을 늘리는 데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우려는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기 측면에서는 아직 뚜렷한 둔화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출이 좋다. 최근 발표된 11월 수출액은 604억달러로 월간 단위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전년동기비 증가율로도 32.1%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가격 효과를 제외한 물량 증가율도 8%대였고, 15대 산업 중 13개가 플러스를 기록했다. 나무랄 데 없는 실적이다. 글로벌 경제가 좋아진 점도 있겠지만,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진 결과로 보기에 충분하다. 고점보다 수출 증가율이 내려가고 있어 주가 상승의 힘이 떨어진 것도 분명하지만, 증시가 추세적으로 하락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또한 수입 증가율도 높았는데, 이는 소비, 투자 등 내수 경제 활동 역시 한결 활발해졌음을 시사한다.
업계에서는 내년 수출 증가율이 올해보다 크게 떨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최근 전경련은 기업들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올해 24%를 넘는 수출 증가율이 내년에는 3%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 놓은 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업들은 이런 조사에서 보수적인 응답을 하는 경우가 많고, 기저효과를 고려한 결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적어도 상반기 중 세계 경기가 확장 국면을 이어가는 한 우리 수출도 호조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에도 큰 흐름상 코로나19의 영향이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이미 5차례의 재확산이 나타난 상황인데, 확산 속도는 빨라도 치명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주요국의 백신 접종률도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과 경제적 충격을 고려할 때 각국의 봉쇄 조치가 장기화하진 않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면 세계 경기는 다시 확장세를 나타낼 것이고, 우리 수출과 기업이익에 대한 전망도 좋아질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의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 헝다그룹 사태 이후 급격하게 얼어붙은 중국 부동산 시장 등 2대 경제 대국의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가가 잘 잡힐 수 있을 것인가도 문제이고, 예상과 달리 코로나19가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경우 유동성 위축을 상쇄할 만한 경기 확장이 무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그래서 유동성 공급과 경기 확장이 동시에 나타났을 때와 같은 주가 상승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탄탄한 세계 경제와 수출 호조세는 우리 증시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