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금융·경제 전문가들 절반 이상이 1년 안에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만한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최근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뛴 만큼 가계부채와 기업 부실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잠재적 리스크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하반기 시스템 리스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58.3%가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단기(1년 이내)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상반기 조사 때(26.9%)보다 크게 뛴 것이다. 이는 지난 2~9일 금융기관과 투자은행, 연구소 등의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72명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다.
대부분은 가계부채를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국내 금융시스템의 주요 리스크 요인(복수 응답)을 물어본 결과,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 및 상환부담 증가’라고 답한 비중이 69.4%로 가장 높았다. 상반기(43.8%)에 비해 응답 비중이 크게 늘었다. 상반기 조사 이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취약 차주나 과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 부실위험이 그 뒤를 이었다. 응답자 중 62.5%가 이번에 새로 리스크 요인으로 선정된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 악화에 따른 부실위험 증가’를 꼽았다. 특히 응답자들이 1순위로 꼽은 리스크 요인만 놓고 보면 기업 부실위험의 비중이 27.8%로 가장 높았다.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비싼 금리에 자금을 조달하거나 이마저 실패하는 사례가 늘어난 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날 금융투자협회 집계를 보면, 회사채(AA-등급)와 국고채 3년물 간 신용 스프레드(금리 격차)는 지난 25일 1.75%포인트까지 벌어지며 오름세를 이어갔다. 지난 9월 말(1.10%포인트)보다 0.65%포인트 높다. 이달 들어 통화긴축 속도 조절에 대한 기대 등으로 국고채 금리가 빠르게 떨어졌으나, 회사채(AA-) 금리는 여전히 5%대 중반에서 오르내리는 형국이다. 기업어음(CP) 91일물(A1등급) 금리도 같은 날 5.50%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더해갔다.
그밖에도 대체로 부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금융기관 대출 부실화 및 우발채무 현실화 우려’(48.6%)라고 응답한 비중이 그 다음으로 높았다. 반대로 최근 70달러대로 내려앉은 국제유가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상반기 때 가장 응답 비중이 높았던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은 79.9%에서 34.7%로 떨어졌다.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특정 위기 시나리오가 실현되는 경우 금융기관들이 받는 충격을 측정해보는 분석 기법을 일컫는다. 전문가들은 특히 앞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큰 저축은행과 증권사의 취약성이 가장 크게 부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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