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금융시장 현황 점검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이달 초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72명에게 ‘1년 안에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단기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58.3%(매우 높음 12.5% 포함)가 ‘높다’고 대답했다고 27일 발표했다. 반기에 한번씩 하는 이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에서 전문가들이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한 비율은 2021년 하반기 12.5%에서, 올해 상반기 26.9%로 늘었다가 이번에 큰 폭 상승했다. 금융시스템 위기는 실제 닥치면 실물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크고, 치유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위기 예방에 더 적극 노력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조사에서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 및 상환부담 증가’를 리스크 요인으로 줄곧 지목했다. 가계 부채를 지목하는 비율도 상승해왔다. 그런데 이번 조사를 보면, 가계부채(69.4%)에 이어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 악화에 따른 부실위험 증가’(62.5%)를 리스크 요인으로 새로 꼽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금융기관 대출 부실화 및 우발채무 현실화 우려’를 꼽은 경우도 48.6%에 이르렀다. 금융 취약성이 가장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 금융업권으로는 저축은행, 증권사, 캐피털사 등 비은행업권을 꼽았다.
이런 우려를 키운 과정에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취약해지고 있던 기업어음 시장을 흔든 것은 지난 9월 말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투자 관련 기업어음에 대한 보증채무 불이행이었다. 이 일로 신용 경색이 일어났지만, 금융당국은 상당 기간 방치했다. 흥국생명은 이달 초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의 조기상환권 행사를 연기했다가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지난 9일 조기상환권 행사를 결정했다. 금융당국은 그것이 시장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고 눈감았다.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올해 27조원어치를 순발행한 한전채도 회사채 시장에 큰 부담이 되고 있지만, 정부는 내년에도 같은 대응을 할 태세다.
‘병을 빨리 잘 고치려면 소문내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야 빨리 좋은 의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에 대한 경고들도 깊이 새겨듣고 적기에 대응을 하면 예방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 관리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문제가 터지면 뒤쫓아가는 식의 대응 말고, 위험을 예측해 필요한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