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주춤거리던 국내 증시가 5월 중순 이후부터 다시 의미 있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강력한 긴축이 금융 시스템 불안이나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락 시에는 폭이 제한되고 회복될 때는 전고점 이상으로 주가가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글로벌 증시가 4월 중순 이후 전반적인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우리 증시의 상승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증시의 상대적 호조세는 주력 산업에서 나타나는 기업들의 선전, 또는 앞으로 선전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으로 판단된다. 대표적으로 현대차 그룹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판매량에서 앞서는 일본의 도요타나 독일의 폴크스바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기차 분야에서의 선전이 겹쳐져 향후 생산 및 판매량에서도 순위를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업종 역시 대규모 수주와 글로벌 조선사 수의 감소에 따른 수혜가 겹쳐 상당 기간 호황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기대도 뜨겁다. 아직은 실적이 부진하지만, 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하반기 이후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주요 기업이 감산에 나서면서 수급이 개선될 것이라는 예상, 챗지피티(GPT)가 몰고 온 인공지능(AI) 붐이 관련 반도체 수요의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다. 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등장하고 있지만, 뒤처질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는 우량 기업의 투자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기대는 자연스럽다. 당연히 우리 경제 전망 전반에 대한 긍정적 시각도 늘고 있다. 주요 산업의 회복으로 하반기에는 수출이 늘고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설 것이며, 성장률도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해당 산업이 수출과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다.
이렇듯 조금씩 살아나는 희망에도 불구하고 불안함 역시 공존한다. 저성장이 대표적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4%로 낮췄다. 지난해 5월부터 5회 연속으로 전망치를 내린 것이다. 동시에 금리 인하에도 선을 그었다. 물가 불안이 여전한 데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는 데 대한 부담이 컸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레버리지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환경은 이미 증시에서 나타나고 있는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환경이 좋거나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산업은 높아진 금리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금리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연히 미래를 위한 투자에서도 격차가 발생한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응용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진 시기에 격차를 줄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논리는 가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특정 산업에 속한 근로자들과 그렇지 못한 근로자들의 부채 부담 정도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주력 산업의 업황 호전 기대와 이에 기반한 해당 산업 내 기업의 주가 상승은 분명 긍정적 신호다. 여기에 최근 한·미·일 공조 하에서 유독 세 나라의 증시가 호조세를 보이는 점도 관심이다. 공급망 재편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보면 만만치 않은 정책 환경과 양극화라는 불안 요인이 힘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어떤 힘이 더 강하게 작동할 것인지 불확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주력 산업에 속한 기업들에 대한 선별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SK증권 미래전략부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