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전재준(가명·29)씨는 지난달 서울 관악구에 있는 7억원대 아파트를 구입했다. 모아둔 돈이 1억원 수준에 그쳤던 그가 ‘내 집 마련’을 마음먹은 계기는 특례보금자리론이었다. 소득 요건이 없어 지난해 연소득이 9천만원대인 재준씨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주택가격 상한이 9억원이라 서울 아파트를 노릴 수 있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에 구애받지 않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30년 만기로 5억원을 빌린 재준씨에게 적용된 금리는 연 4.35%. 체증식 분할상환 방식을 적용하고 나니 초기에 매달 내야 하는 돈은 180만원에 불과했다. 결국 신용대출 1억원을 얹어서 일반 대출의 디에스알 규제 한도(40%)를 훌쩍 넘는 디에스알 50%대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다. 관악구 아파트 시세는 재준씨가 집을 산 즈음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재준씨는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상품이 다시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영끌’했다”고 말했다.
재준씨 사례는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이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제공된 특례보금자리론은 상당 부분 ‘역마진’ 구조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손실을 보며 고소득층의 ‘내 집 마련’ 자금을 지원했다는 뜻이다. 이는 서울 아파트 시세 반등과 가계부채 증가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16일 한국예탁결제원 집계를 보면, 지난 1~7월 주금공이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의 금액·만기 가중평균 금리는 연 4.354%다. 시장금리가 오른 지난 6~7월로 좁히면 4.542%로 껑충 뛴다. 주금공이 소비자에게 빌려줄 돈을 조달하기 위해 내야 하는 이자가 그 정도라는 얘기다. 각종 운영 비용까지 더하면 주금공으로서는 상당한 ‘역마진’을 떠안은 셈이다. 지난 10일까지 적용된 특례보금자리론의 금리(온라인 신청 기준)는 일반형이 4.15~4.45%, 우대형이 4.05~4.35%다. 이형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금리 상승기에 차주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주금공이 약간 손해를 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의 예상 밖 흥행을 고려하면 ‘역마진’의 함의는 가볍지 않다. 지난달까지 들어온 특례보금자리론 유효신청액은 31조1285억원으로 금융위가 예상했던 1년 공급액의 79%에 이른다. 유효신청액의 최소 41%가 부부 합산 연소득 7천만원 초과 차주에게 해당됐는데, 이는 기존 보금자리론처럼 연소득 상한(부부 합산 7천만원) 조건이 있었다면 공급되지 않았을 금액이다. 정부가 고소득층에도 문을 열어두자 수요가 몰렸고, 이는 주금공의 손실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특례보금자리론이 집값 반등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했다고 본다. 특히 기존 보금자리론에서는 6억원이었던 주택가격 상한을 9억원으로 높인 게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면서 서울 시내 아파트도 일부 범위 안에 들어온 탓이다.
실제로 9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은 관악구와 은평구 등에서는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이후 매매거래량이 크게 늘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를 보면, 관악구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올해 1월 22건에서 5월 97건, 6월 298건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수석전문위원은 “특례보금자리론이 워낙 파격적인 상품이다 보니 부동산 매수 심리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계대출도 증가 추세가 굳어졌다. 주택담보대출이 증가세로 전환한 지난 3월 통계를 보면, 일반 개별 주담대는 한달간 1조9천억원 줄었지만 특례보금자리론을 포함한 정책모기지론은 7조4천억원이나 불어났다. 그 영향으로 집값이 반등 조짐을 보이자 최근에는 일반 개별 주담대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 개별 주담대 증가폭은 지난 4월 3천억원에서 7월 3조9천억원으로 확대됐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