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올리란 건지 내리란 건지 모르겠다.”(한 시중은행 관계자)
은행권을 겨냥한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 이후 정책 엇박자 조짐이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당장 금융회사들을 불러모아 가계부채 규모는 줄이되 서민금융 지원은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상충할 여지가 큰 두가지 정책목표를 동시에 추진하는 모습이다.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에 시장에 퍼질 혼란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6일 금융위원회 발표를 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6개 금융업권협회 회장단과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만나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올해 2분기 증가세로 돌아선 가계부채와 이날부터 전면 금지된 공매도,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고금리 부담 등 세가지가 안건으로 올랐다.
금융위는 먼저 금융권의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을 독려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대출금리가 올라 언제쯤 사정이 나아질지 기약하기 어렵다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달라”며 “좀 더 체감 가능한 지원책 마련에 지혜를 모아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출금리를 낮추거나 저금리 대출 규모를 늘리는 등의 대책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에 따른 여파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고 말했다. 고금리 국면이 이어지며 표심이 악화하자 은행들의 ‘이자 장사’로 화살을 돌린 모양새다.
서민금융 지원 확대는 가계대출 관리 강화라는 기존의 방침과 상충할 여지가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세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금융권에도 적극적인 관리를 주문해왔다. 이에 발맞춘 금융회사들은 대출금리를 올려 가계대출 수요를 누그러뜨리는 식으로 대응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콕 집긴 했으나 다시 대출금리를 낮춰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라는 취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종노릇’ 발언으로 촉발된
‘은행 횡재세’ 논의를 둘러싼 혼선도 있다. 은행 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기관의 수장이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례적인 풍경이 펼쳐진 탓이다. 횡재세가 신설되면 은행이 부실채권에서 발생한 손실을 흡수하는 능력이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을 비교해보면 삼성전자, 엘지(LG)전자, 현대자동차를 다 합친 것보다도 은행권의 영업이익이 더 크다”며 “세금으로서의 횡재세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그걸 토대로 해서 제가 말한 문제점이 논의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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