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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100억 달러 긴급투입’ 왜?
은행들 외화자금난에 수출환어음 매입까지 기피
세계 신용경색 장기화땐 정부 긴급처방도 ‘한계’ 26일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을 헐어 최소 1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외환 시장에 쏟아붓기로 한 이유는 그만큼 국내 자금시장에 ‘달러 가뭄’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외화 조달이 어려워진 은행들이 앞다퉈 수출기업의 환어음 매입까지 기피하면서 자칫 외화자금난이 실물 경제에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진 것도 정부가 더이상 시장 개입을 미룰 수 없게 한 배경으로 보인다. 국내 자금시장에 달러 품귀현상이 나타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부터다. 국내 은행에 외화를 공급하던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신용경색 확대를 우려하면서 앞다퉈 달러 회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영기 산업은행 부행장은 “현재 글로벌 은행들은 달러 운용조차 하지 않은 채 현금 상태로 꽉 움켜쥐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세계 자금시장에서 달러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국제 자금 조달 금리의 표준이 되는 리보 금리는 연일 급등세다. 최근 2~3개월 동안 연 2.81% 수준을 유지했으나, 리먼 쇼크가 발생한 지난 15일 이후 25일 현재까지 0.96%포인트 급등해 연 3.77%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신용도에 따라 리보금리에 덧붙여지는 가산금리도 급상승했다. 한 시중은행 자금 담당자는 “과거엔 리보금리에 3%포인트 정도 더 주면 달러 조달에 어려움이 없었다”며 “최근엔 10%포인트 더 얹어준다고 해도 달러를 주겠다는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단기자금시장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외화 스와프시장에서 스와프포인트(선물환율과 현물환율 간 차이)는 지난 16일 이후 연일 마이너스 행진이다. 달러를 현 시점에서 일단 빌리고 난 뒤, 나중에 갚으려는 수요가 더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주 들어 1개월물은 물론, 오버나이트(하루짜리 달러차입)마저도 어렵다. 어디서도 달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화조달이 여의치 않자 시중은행들은 외화대출 축소는 물론, 수출기업들의 환어음 매입까지 줄이고 있다. 환어음은 수출업체가 수입업체의 송금 전에 수출대금을 받기 위해 발행하는 어음으로, 시중은행은 이를 매입해 해당 기업에 외화 자금을 공급한다. 은행들의 환어음 매입 기피는 수출기업의 외화 자금난으로 연결돼,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위기가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지난 1967년 외국환평형기금을 조성한 이후 최대 규모로 단기자금시장에 달러를 공급키로 한 만큼 달러 품귀 현상은 일단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미국의 7천억 달러 구제금융 방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시장 경색 완화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외환 스와프 시장에선 정부의 유동성 공급에 대한 기대감으로 1개월물 스와프포인트가 전날보다 4.00원 급등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현재 달러 품귀 현상은 결제수요가 몰리는 월말에다 분기말이 겹친 탓도 있다”며 “정부까지 시장에 개입키로 한 만큼 9월말이 지나면 자금시장이 진정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전 연구원은 그러면서도 “글로벌 신용경색이 장기화되고 있어, 장기적으로 정부의 유동성 공급 대책의 효과도 한계가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 외화스와프 시장은 달러 빌려쓰고 갚는 시장 미 신용경색 여파로 ‘품귀’현상 원화를 팔아 달러화를 사거나 달러화를 팔아 원화를 사는 외환시장과 달리 외화를 빌리고 빌려주는 대차시장이다. 외화 유동성 공급을 위한 정부의 외화 스와프 시장 참여는 외국환평형기금을 이용해 현물환을 팔고 선물환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즉 외화 스와프 시장에 달러를 풀어서 달러가 필요한 금융기관들에 빌려주겠다는 얘기다. 은행들은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외화자금을 조달할 때 수입업체들처럼 달러화를 사는 게 아니라, 스와프 시장 등에서 달러를 빌려와서 만기가 되면 다시 달러로 갚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의 신용 경색이 심해지면서 스와프 시장의 주요 참여자인 외국은행 국내 지점들조차 본점으로부터 달러화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외화 유동성 부족이 심각해졌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현재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일주일짜리 ‘론(차입)’도 없어져 모두 하루짜리 달러 차입인 ‘오버나이트’로 거래하고 있다”며 “가장 타격이 큰 부분은 외화 유동성”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550억달러에 이르는 외국환평형기금의 일부를 동원해 직접 스와프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부는 “스와프 시장에 참여한다고 해서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는 것은 아니며, 이론적으로 볼 때 수급에 의한 환율 등락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장 일부에선 “궁극적으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10월 초 발표되는 외환보유액 집계에서 보유액이 감소한 것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역외세력의 달러 매수 수요를 키워 환율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세계 신용경색 장기화땐 정부 긴급처방도 ‘한계’ 26일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을 헐어 최소 1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외환 시장에 쏟아붓기로 한 이유는 그만큼 국내 자금시장에 ‘달러 가뭄’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외화 조달이 어려워진 은행들이 앞다퉈 수출기업의 환어음 매입까지 기피하면서 자칫 외화자금난이 실물 경제에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진 것도 정부가 더이상 시장 개입을 미룰 수 없게 한 배경으로 보인다. 국내 자금시장에 달러 품귀현상이 나타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부터다. 국내 은행에 외화를 공급하던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신용경색 확대를 우려하면서 앞다퉈 달러 회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영기 산업은행 부행장은 “현재 글로벌 은행들은 달러 운용조차 하지 않은 채 현금 상태로 꽉 움켜쥐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세계 자금시장에서 달러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국제 자금 조달 금리의 표준이 되는 리보 금리는 연일 급등세다. 최근 2~3개월 동안 연 2.81% 수준을 유지했으나, 리먼 쇼크가 발생한 지난 15일 이후 25일 현재까지 0.96%포인트 급등해 연 3.77%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신용도에 따라 리보금리에 덧붙여지는 가산금리도 급상승했다. 한 시중은행 자금 담당자는 “과거엔 리보금리에 3%포인트 정도 더 주면 달러 조달에 어려움이 없었다”며 “최근엔 10%포인트 더 얹어준다고 해도 달러를 주겠다는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단기자금시장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외화 스와프시장에서 스와프포인트(선물환율과 현물환율 간 차이)는 지난 16일 이후 연일 마이너스 행진이다. 달러를 현 시점에서 일단 빌리고 난 뒤, 나중에 갚으려는 수요가 더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주 들어 1개월물은 물론, 오버나이트(하루짜리 달러차입)마저도 어렵다. 어디서도 달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화조달이 여의치 않자 시중은행들은 외화대출 축소는 물론, 수출기업들의 환어음 매입까지 줄이고 있다. 환어음은 수출업체가 수입업체의 송금 전에 수출대금을 받기 위해 발행하는 어음으로, 시중은행은 이를 매입해 해당 기업에 외화 자금을 공급한다. 은행들의 환어음 매입 기피는 수출기업의 외화 자금난으로 연결돼,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위기가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지난 1967년 외국환평형기금을 조성한 이후 최대 규모로 단기자금시장에 달러를 공급키로 한 만큼 달러 품귀 현상은 일단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미국의 7천억 달러 구제금융 방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시장 경색 완화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외환 스와프 시장에선 정부의 유동성 공급에 대한 기대감으로 1개월물 스와프포인트가 전날보다 4.00원 급등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현재 달러 품귀 현상은 결제수요가 몰리는 월말에다 분기말이 겹친 탓도 있다”며 “정부까지 시장에 개입키로 한 만큼 9월말이 지나면 자금시장이 진정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전 연구원은 그러면서도 “글로벌 신용경색이 장기화되고 있어, 장기적으로 정부의 유동성 공급 대책의 효과도 한계가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 외화스와프 시장은 달러 빌려쓰고 갚는 시장 미 신용경색 여파로 ‘품귀’현상 원화를 팔아 달러화를 사거나 달러화를 팔아 원화를 사는 외환시장과 달리 외화를 빌리고 빌려주는 대차시장이다. 외화 유동성 공급을 위한 정부의 외화 스와프 시장 참여는 외국환평형기금을 이용해 현물환을 팔고 선물환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즉 외화 스와프 시장에 달러를 풀어서 달러가 필요한 금융기관들에 빌려주겠다는 얘기다. 은행들은 환위험을 피하기 위해 외화자금을 조달할 때 수입업체들처럼 달러화를 사는 게 아니라, 스와프 시장 등에서 달러를 빌려와서 만기가 되면 다시 달러로 갚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의 신용 경색이 심해지면서 스와프 시장의 주요 참여자인 외국은행 국내 지점들조차 본점으로부터 달러화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외화 유동성 부족이 심각해졌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현재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일주일짜리 ‘론(차입)’도 없어져 모두 하루짜리 달러 차입인 ‘오버나이트’로 거래하고 있다”며 “가장 타격이 큰 부분은 외화 유동성”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550억달러에 이르는 외국환평형기금의 일부를 동원해 직접 스와프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부는 “스와프 시장에 참여한다고 해서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는 것은 아니며, 이론적으로 볼 때 수급에 의한 환율 등락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장 일부에선 “궁극적으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10월 초 발표되는 외환보유액 집계에서 보유액이 감소한 것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역외세력의 달러 매수 수요를 키워 환율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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