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등 11곳 기관투자자 손배 소송 내
영업정지에 손해배상까지 물리면 큰 타격
영업정지에 손해배상까지 물리면 큰 타격
삼일, 삼정, 한영과 함께 회계 ‘빅4’로 꼽히는 딜로이트안진이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대우조선 회사채 투자 손실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일제히 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외부감사인인 안진은 앞서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눈감아 준 사실이 드러나 금융당국으로부터 1년 간 영업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심각한 신뢰 훼손을 입은 상태에서 영업정지에 따른 매출 감소에 손해배상까지 더해지면 경영상황이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대우조선 회사채에 3900억원을 투자한 국민연금을 비롯해 우정사업본부와 사학연금 등 11개 기관투자자는 지난 14일 일제히 서울중앙지법에 대우조선과 안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한결 쪽은 “왜곡된 회계 정보로 발행된 회사채에 투자해 발생한 손실을 대우조선과 안진이 연대해서 책임지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안진이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는 것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가담 정도가 전례없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안진은 지난해 12월 대우조선을 감사했던 회계사 3명과 법인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안진이 대우조선의 매출 부풀리기와 이중장부 등을 파악하고도 눈감아 준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 관계자는 “회계사뿐 아니라 법인까지 함께 기소된 것은 그만큼 안진의 혐의가 무겁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분식회계로 인한 손배 소송에서 외부감사인의 과실은 30% 정도 인정된다. 회사 쪽에서 작심하고 속일 경우 감사에서 이를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진은 검찰에 의해 기소될 정도로 고의성이 짙기 때문에 과실 비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경재 변호사(법무법인 영진)는 “재판에서 고의성이 인정되면 외부감사인의 과실비율은 50%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등이 사들인 대우조선 회사채 규모는 9700억원에 이른다. 대우조선이 얼마나 상환하느냐에 따라 손실 규모가 달라지지만, 조선업황을 고려하면 상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민연금이 채무 조정안을 받아들이면 2682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문제는 안진이 소송에 대비해 비축해 둔 ‘실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감사보고서를 보면, 안진은 손해배상공동기금으로 288억원을 쌓았고, 2976억2500만원의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다. 하지만 재판에서 고의성이 인정되면 보험 커버가 크게 떨어진다.
또 안진은 대우조선 주식 투자에 따른 손배 소송에도 걸려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소송액은 1603억원에 달한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안진의 경우 회계사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문제가 원인으로 보인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업계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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