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 기자 kdhan@hani.co.kr “코스피가 3천도 간다는데 지금 들어가도 돼?” 증권시장을 취재하는 저도 불타는 증시를 보면 속이 아립니다. <한겨레> 증권시장 담당기자는 이해 상충 가능성을 피하고자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게 불문율로 돼 있답니다. 사실 증시 기사는 ‘꿈보다 해몽’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실업률이 높아져도 주가가 오르면, 금리 인상이 늦춰질 거라는 안도감 때문이라고 주로 씁니다. 금리를 인상해도 주가가 오르면, 경제가 그만큼 튼튼해졌다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이유를 갖다 붙입니다. 그러니 이 ‘친절한 기사’도 너무 과신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요즘 코스피가 뜨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세계 경기 회복 → 한국 수출 호조 → 기업 실적 개선. 물론 결정적인 한방은 밀물처럼 들어온 외국인의 투자 자금에서 터졌죠. 올 들어 세계 주식시장은 동반 상승장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12일 현재 코스피 상승률은 12.81%로 미국의 나스닥 지수(13.61%)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요국 가운데 최상위권에 올라 있습니다. 영국이 유럽연합과 ‘이혼 도장’을 찍은 뒤 세계 증시를 짓눌러왔던 유럽의 주가도 치솟았습니다. 사실 코스피는 ‘슬로 스타터’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지난해 11월 이후 석달간 주가 상승률을 살펴볼까요? 미국의 나스닥과 다우 지수는 9~10% 올랐네요.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은 3%가 채 안 됐습니다. 이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죠?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발표가 지난해 11월25일 나왔지요. 이후 한국 사회가 탄핵 국면으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소비심리는 최악으로 떨어졌습니다. 코스피가 도무지 오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올 1월25일 다우 지수가 역사적인 2만선 고지를 넘어서고 한참 뒤인 2월 중순에야 코스피는 세계 증시 상승 대열에 막차로 올라탑니다. 그리고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조기 대선 일정이 잡히자 글로벌 증시와 본격적인 ‘키 맞추기’에 들어간 겁니다. 요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요?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나는데도 한국 주가는 신흥국 중에서도 헐값에 거래됐는데, 이젠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거라는 뜻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헛공약으로 끝난 경제민주화 정책이 새 정부에서는 추진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코스피의 원군이 되고 있는 거죠. 코스피가 3천 간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한 외국계 증권사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금 증가를 전제로 내놓은 전망치입니다. 국내 애널리스트들도 용감해졌습니다. 촛불이 한창 타오르던 무렵 증권사들은 정부의 부정부패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라는 공식 리포트를 냅니다. “부패지수가 지난 10년간 한층 심해진 한국은 대통령 탄핵 여부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대목에선 마치 시민단체의 성명서를 보는 듯했습니다. 주가지수가 올라도 개인은 돈을 벌지 못하고 외국인만 과실을 누린다는 보도가 또 나오네요. 올 들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산 10개 종목 가운데 주가가 떨어진 건 하나뿐입니다. 반면 개인들이 많이 산 10개 종목 중 오른 건 둘에 그칩니다. 개인이 많이 내다 판 종목은 죄다 올랐습니다. 저는 에스엔에스(SNS)에서 이런 기사를 보면 ‘좋아요’를 누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속상한 개미를 조롱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직접투자 하지 말고 펀드 들라고 했잖아”라는 속내도 깔려 있다고 봅니다. 주가가 오르는 것은 무엇보다 돈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은 투자 포트폴리오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투자 비중을 주기적으로 조절하는 과정에서 한국 시장에도 자금이 배분됩니다. 특정 종목보다는 그냥 ‘한국’을 삽니다. 삼성전자 등 대형주 꾸러미를 사들이는 방식입니다. 한번 물면 쉽게 놓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이 사는 대형주가 오르고 그 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리는 것이죠. 하지만 이들이 변심하면 무섭게 주식을 패대기칩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얘기도 있지만, 수영장의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있었는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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