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새 정부에 대한 정책 요구 사항을 발표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된 ‘성과연봉제’에 대한 의지를 에둘러 강조했다가, 은행노조 상급단체인 금융산업노조의 거센 항의가 쏟아지자 뒤늦게 해명자료를 내는 등 오락가락 행보로 입길에 올랐다. 새 정부는 노사 합의 없이 강행된 성과연봉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뜻을 밝힌 터다.
31일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어 “하영구 회장이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며 “하 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을 최선두에서 밀어붙이고 금융 노사관계의 오랜 전통인 산별교섭을 파탄낸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하 회장은 지난 29일 발표한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은행권 제언 14개 과제’에서 ‘은행권 임금체계 유연성 제고’를 요구사항으로 담았다. 구체적으론 호봉제를 문제로 지목하고 직무급제와 합리적 성과측정에 따른 성과배분 도입을 요청했다. 하 회장은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선 이런 요구가 결국 ‘성과연봉제’를 가리키는 것임을 스스로 확인했다. 하 회장은 “기본적으로 성과연봉제라는 것이 임금체계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호봉제 폐지, 직무급제 도입, 성과측정에 의한 합리적 성과배분 세가지가 있고, 세가지가 합해져서 성과연봉제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세 가지를 한꺼번에 다 도입하는 게 가능하냐, 단계별로 가느냐는 숙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다만, 하 회장은 상황 변화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며 노사합의의 필요성을 덧붙였다.
당장 금융산업노조는 이를 성과연봉제 불씨 살리기로 보고 반발하고 나섰다. 은행연합회 발표 다음날인 30일 오전 하 회장을 항의 방문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은행연합회는 금융노조에 해명자료를 낼 뜻을 전하며 물러섰다. 또 산별교섭 창구인 사용자협의회 복원을 검토할 뜻도 비쳤다.
은행연합회는 이날 오후 ‘성과연봉제’ 언급 대목에 대해 “직무급제 도입 등과 성과에 대한 합리적 배분을 통해 임금체계의 유연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것”이란 어정쩡한 자료를 내놨다. 전날은 두가지가 같은 말이라고 해놓고, 다음날은 그게 서로 다른 말인양 어설픈 자기부정을 한 모양새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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