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nomy | 현장에서
어쩌다 한 운동으로 어깨를 다쳐서 지난해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접수대 직원은 초진 여부와 함께 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를 표시하라고 했다.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의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실손보험이 없어요?” 멋쩍게 웃으면서 “가입 안 했다”고 했더니, 의사도 웃으면서 “그러면 싼 걸로 해줄게요”라고 한다. “치료가 달라져요?” 하고 짐짓 모르는 체 되물었더니,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실손보험이 없어서 ‘좋은 치료’를 못 받은 것일까, 아니면 ‘과잉의료’를 피해간 것일까. 환자였던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실손보험은 2007년 처음 출시돼 2015년말 기준으로 가입자 규모가 32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런 실손보험료가 계속 인상돼 가계에 부담을 주는 만큼 올해 하반기부터 인하 유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지난 21일 발표했다.(▶관련기사 : 실손보험료 인하, 법으로 강제한다) 당장 보험업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보험사 실손보험 평균 손해율이 120~130%대를 오가는 판에 보험료를 내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주장이다. 과거 건강보험 보장 확대의 과실은 보험업계가 아니라 과잉의료를 한 일부 의료계가 챙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부가 비급여 의료 관리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건강보험 보장범위를 넓혀봐야 의료비 총액은 줄지 않고 보험 손해율도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험업계의 주장은 향후 따져봐야 할 구석이 많다. 업계가 발표하는 손해율이 적합하게 산정된 것인지, 이익이 많이 남는 종신보험·시아이(CI)보험을 많이 팔려고 손해를 알고도 소비자가 좋아하는 실손보험을 끼워팔기 한 원죄는 제쳐놓고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국정기획위는 이번 정책을 발표하면서 국민 의료비 부담 축소가 첫번째 목표라서 개별회사의 이해관계를 우선 고려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업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은 있다.
앞서 새 정부의 실손보험 인하 공약은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큰 제목 아래 든 하위 항목이었다. 본질적으론 국민 의료비 부담에서 공적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영역을 키우고 민간 의료보험 역할은 축소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보험업계의 실손보험료 인하로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핵심은 비급여 의료시장을 통제해 국민 총의료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일 텐데, 이에 대한 정책은 구체적 실체가 아직 모호한 상태다.
실손보험은 현재 가입자 100명 가운데 20~30명이 과잉의료를 소비하고, 나머지 70여명이 보험료 폭등의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구조다. 보험사가 실손보험료를 내린다 한들, 문제의 20~30명과 일부 의료계가 과잉의료 판매와 소비의 기존 행태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은 정부가 향후 출시를 장려할 합리적 실손보험상품으로 갈아탈 유인이 거의 없는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잉의료를 유발하는 기존 실손상품의 보험료를 무리하게 인하할 경우 기존 가입자들이 문제의 상품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이 큰 게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실손보험료 인하 정책은 일단 3200만 가입자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박수소리가 정책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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