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월 경찰이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한테서 압수한 증거물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2013년부터 보이스피싱 등 전자금융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금융회사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으나, 실제 소송에서는 배상 책임이 단 한 건도 인정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3부터 최근까지 전자금융사기 피해자 444명(피해액 88억7900만원)이 제기한 45건의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한 것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정부는 2013년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 보이스피싱이나 파밍(가짜 사이트로 접속을 유도해 개인 금융정보를 빼가는 범죄) 등 전자금융사기 피해자가 금융회사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금융회사의 과실 유무와 관계없이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무과실 책임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금융회사의 책임이 단 한 건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는 소비자의 고의·중과실을 금융회사가 입증하면 면책이 되는 조항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시행령에는 ‘보안 조처를 위한 매체·수단·정보의 누설·노출·방치’를 피해자의 중과실로 규정했다. 이 조항에 따라 파밍 등으로 개인 정보가 유출되면 사실상 무조건 소비자의 중과실로 인정된다.
이학영 의원 쪽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선 피해자가 계좌 도용이나 도난 등의 피해 사실을 알고 일정 기간 내에 이를 통보하면 금융회사가 그 피해를 보상한다. 하지만 우리는 피해자 중과실 조항 때문에 무과실 책임주의가 유명무실해졌다.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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