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의 ‘마이웨이’식 독자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삼성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복잡한 출자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에는 다른 그룹들도 그랬지만, 그간 정부 정책과 투자자·시민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좀더 단순한 지배구조로 바뀌어왔다. 엘지(LG)와 에스케이(SK)가 2000년대 초중반에 일찌감치 지주회사로 전환한 데 이어, 씨제이(CJ)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최근 들어선 현대차·한화그룹도 슬슬 개편에 나서는 중이다. 삼성만 요지부동이다. 이런 배경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삼성그룹의 기형적 지배구조가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승계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다만 삼성이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이 내세운 항변에도 그럴 듯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과거 정부의 설득 논리가 허술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주회사 전환에 들어갈 수십조원을 일자리 창출과 투자에 쓰는 게 국민 경제에 더 이롭지 않나?” “지주회사가 반드시 더 바람직한 지배구조라고 할 수 있는가?” “지배구조에 정답이 있는가?” 100%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주장들이다.
하지만 앞으로 전개될 상황은 과거와는 사뭇 다를 것 같다. 금융위원회가 올 하반기 입법을 벼르고 있는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은 전혀 다른 논리와 명분으로 무장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유도한다. 삼성전자 등 그룹 내 비금융계열사의 사업 위험이 출자고리를 타고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의 부실으로 전이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피해의 종착지는 삼성 금융계열사의 수많은 고객이라는 점을 짚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보험 가입자가 삼성전자의 부실로 인해 보험금을 돌려받지 못한다거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일을 사전에 막자는 것이 취지다. 이 법은 삼성그룹에 출자고리를 해소하거나, 위험을 흡수할 수 있도록 수조원의 자본을 더 쌓을 것을 요구한다.
이런 방안은 ‘어벤저스’급으로 재벌개혁 의지를 내비치는 현 정부 인사들이 고안해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근 채용비리 의혹으로 사임한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그들이다. 재벌개혁 방안의 수립과 집행의 책임자들이다. 2015년 5월 한국금융연구센터 주관으로 열린 ‘금융그룹 통합감독’ 심포지엄의 발제자가 최흥식 전 원장(당시 서울대 경영대 겸임교수)과 김상조 위원장(당시 경제개혁연대 소장)이었던 것도 의미심장하다. 통합감독안이 수년간 숙성돼왔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방안은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2014년 일찌감치 한국에 권고한 내용이기도 하다. 단순히 재벌에 부정적인 ‘진보정부의 팔 비틀기’라는 식으로 삼성이 여론전을 펴기 어려운 조건들이다.
삼성그룹이 통합감독 방안을 저지할 길은 두 가지다. ‘어벤저스’를 요직에서 끌어내리거나 보수 야당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전선을 ‘삼성 대 어벤저스’가 아니라 ‘어벤저스 대 야당’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런 구도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지배구조 개편을 대세로 받아들이고 적극 나서면 될 일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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