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을 포기하고 지분을 매각하는 방향으로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아나가 매물로 나올 경우 시장에서 큰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금호그룹도 핵심 계열사가 팔려나간다면 그룹 구도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14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과 회사 쪽 모두 (아시아나) 매각 외에는 방안이 없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며 “해당 회사에서 최종 이사회 결정이 나와야 하고, 이게 결정되는 걸 보고 채권단이 모여서 (아시아나의) 자금 지원 요청에 대해 방식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채권단이) 영구채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는 카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며 “(아시아나가) 원래 영구채 발행을 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금호그룹 쪽과 채권단은 이번주 중에 아시아나 대주주인 금호산업의 이사회와 채권단 회의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을 거쳐 ‘지분 매각’을 명시한 수정 자구안을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매각 관련 실사를 맡을 회계법인 및 매각주간사 후보에 대한 얘기까지 벌써 흘러나온다.
‘매각 자구안’ 방식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 일가가 아시아나의 경영권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산은 등 채권단이 아시아나가 발행하는 영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 지원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영구채는 만기 없이 이자만 지급하면 되는 채권으로 본질적으론 부채지만 국내 회계에선 자본으로 인정되는 채권이다. 통상적으로 20~30년 이상 장기로 만기를 정하고 수년 뒤 중도상환하는 약정을 두는 경우도 많다.
앞서 아시아나는 5천억원의 신규 자금 지원을 채권단에 요청했는데, 단순 대출로 돈이 들어올 경우 유동성 숨통은 트이지만 부채 비율은 올라가서 재무구조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란 게 시장의 평가였다. 하지만 아시아나가 영구채를 발행하고 채권단이 이를 인수하면 영구채는 자본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부채 비율 개선에 도움이 된다. 아시아나는 지난달 30년 만기 영구채 1500억원 상당을 발행하겠다고 공시해 1차는 850억원 모집에 성공했으나, 나머지 650억원 추가 모집은 감사보고서 한정의견 사태로 무산된 상태였다.
아시아나가 매물로 나올 경우 인수·합병 시장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시아나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인수·합병으로 새 주인이 들어와서 대규모로 자본확충을 하는 게 맞다”며 “아시아나는 한동안 주가가 액면가를 밑도는 등 저평가돼 있었고, 항공시장 자체는 수요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강점이 있는 매물로 사모펀드를 포함해 국내 재벌그룹 등에서도 관심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는 액면가 5천원짜리 주식이 지난해 11월 3250원까지 주저앉으면서 시가총액이 6천억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매각설이 가시화하면서 주가가 급등해 지난 12일 주당 5600원, 시가총액 1조1450억원까지 회복된 상태다. 금호그룹은 ‘박삼구 일가-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으며, 금호산업이 아시아나 지분을 33%가량 보유 중이다.
아시아나는 지난해 에스케이(SK)그룹이 항공사 임원을 영입하는 등 인수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에스케이 쪽은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한 바 있다. 지난 12일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에게 아시아나 인수에 관심이 있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으나, 최 회장은 아무런 언급없이 자리를 떴다. 아시아나 매각이 이뤄지면 금호그룹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박삼구 전 회장 일가는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에서 비롯된 금호그룹 해체 뒤 계열사들을 되찾는 과정에서 자금 부족으로 주요 계열사 지분이 담보로 묶이는 등 난관을 겪어왔다. 지분 매각으로 자금이 들어오면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세라 박수지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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