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주가가 20일 계열사 대한항공의 1조원대 유상증자 추진이라는 풍문에 휩싸이며 26% 남짓 급락했다. 4~5개월 간 이어진 주가 상승 흐름이 한 순간에 꺾인 것이다. 10만원을 넘던 한진칼 주가가 한순간 무너진 이유는 뭘까. 그 배경을 좇다보면, 수개월 동안 이어진 조원태 그룹 회장 쪽과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를 중심으로 한 ‘주주연합’ 간 경영권 다툼도 새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풍문에 무너진 한진칼 주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 주가는 지난해 10월 3만원 수준에서 최근 11만원선까지 네 배가량 뛰어올랐다. 주요 대주주 간 경영권 다툼이 주가 상승의 동력이었다. 기업의 펀더멘탈이라고 할 수 있는 한진칼 실적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던 터라 애초부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란 우려도 적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취지의 ‘풍문’은 이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풍문이 현실화할 경우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최대주주로서 지분율(약 30%)만큼의 증자대금(약 3천억원)을 떠안아야 한다.
물론 대한항공이 실제로 이 정도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할지는 의문이다. 당장 한진칼의 여력이 없다. 지난해 말 현재 한진칼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53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보유 현금을 다 털어넣어도 지분율만큼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없는 셈이다. 대한항공도 이날 오후 공시를 내어 “유상증자와 관련해 내부 검토 중에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며 구체적인 사항은 한 달 뒤인 5월19일에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주가가 급락한 것은 시장이 이 풍문을 코로나19로 부실에 빠진 대한항공의 위기가 한진칼로 전이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가하락에 주요주주 지분도 흔들?
주목할 점은 한진칼의 주가 급락으로 한진칼 경영권 다툼도 새 판이 짜여질 공산이 높아졌다는 대목이다. 다툼을 벌이고 있는 조 회장 쪽과 주주연합 쪽 모두 한진칼 보유 지분을 담보로 현금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주가가 담보 가치 아래로 내려가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는 주식을 처분에 나서면서 양 쪽의 지분율도 요동을 칠 수 있다.
우선 케이씨지아이 쪽은 지난해 12월 이후에만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한진칼 보유 주식을 담보로 라이브저축은행 등 4곳 금융회사에서 모두 230억원을 빌려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 ‘빚투’를 한 것이다. 통상 대출 계약을 맺은 시점의 주가에 견줘 30~40% 담보 주식가치가 내려갔을 때 추가 담보를 내지 못하면 주식 소유권 변경이 발생한다.
케이씨지아이가 가장 최근 맺은 주식 담보 대출 계약 시점은 지난달 30일 전후로, 당시 주가 기준으로 한진칼 주가가 5만2천원 내외에서 반대매매가 일어날 공산이 있다. 지난 17일 케이씨지아이가 ㈜한진 주식 지분 1.96%(매각 대금 약 107억원)를 처분한 것도 과거 받은 주식담보대출 상환을 위한 현금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공시한 바 있다. 다만 케이씨지아이 쪽은 “다른 자산을 팔아서 상환하더라도 한진칼은 장기전으로 보고 지분을 줄일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 쪽은 고 조양호 회장의 상속 재산에 대한 세금을 내기 위해 한진칼 지분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현금을 빌리거나 국세청에 세금 대신 주식을 맡겼다. 비록 ‘빚투’는 아니지만 한진칼 주가 하락 폭에 따라 보유 지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현재 조 회장이 금융회사에 담보로 맡긴 주식수는 128만2500여주에 이른다. 본인 보유 주식 총수의 30% 남짓이다. 지분율로는 2.1% 가량이다.
조 회장의 걱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백기사’들이 떠날 수도 있어서다. 조 회장 우호 지분으로 분류돼 오던 미국 항공사 델타항공(지분율 14.9%)도 코로나19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들며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하는 처지인데, 추가 주가 하락에 따른 보유 지분 가치 감소를 피하기 위해 언제든지 지분 매각에 나설 공산이 있다. 앞서 조 회장 우호지분이었던 카카오도 코로나19 폭풍이 불기 시작한 지난 2월께 보유지분 1% 남짓 중 상당부분을 매각 처분한 바 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