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주요 은행들의 예·적금 금리 인하 공식 발표가 4주 가까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은행 간 눈치보기로 금리조정이 더 지연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그러면 은행권이 한달간 내렸어야 할 금리를 안 내리고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걸까? 아니다. 시중은행들은 주요 예금상품의 경우 올해 한은의 금리 인하폭 정도는 일찌감치 반영해 둔 상태다. 게다가 최근 시장금리는 기준금리 인하와 엇갈려서 한창 반등 중이다. 금융소비자 눈으로 봤을 땐 ‘눈치보기’를 하느라 수신금리를 못 내린다는 은행들 얘기가 ‘심한 엄살’로 들릴 만하다.
13일 주요 시중은행의 금리 자료를 보면, 1년 만기 주요 예금상품의 금리는 올해 7월과 10월 0.25%포인트씩 두 차례 단행된 한은의 금리 인하를 이미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예금은 상품별로 우대요건과 우대폭이 달라서 상호 금리비교가 쉽지 않지만, 최근 많이 팔리는 비대면 전용 상품들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은행 등장 이후 별다른 우대요건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게 이들 상품의 특징이다.
이 상품들의 최근 1년간 금리 추이를 살펴보면, 대체로 지난해 11월30일 한은이 금리를 연 1.75%로 인상한 직후인 12월에 가장 높은 금리대를 형성했다.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연 금리가 케이비(KB)국민 2.09%, 신한 2.15%, 케이이비(KEB)하나 2.1%, 우리 2.35%로 모두 2%대에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11월 현재 이들 상품의 금리는 0.41~0.55%포인트까지 내려와 모두 1%대에 머물고 있다. 국민 1.68%, 신한 1.7%, 하나 1.55%, 우리 1.9% 정도다. 그간 한은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정도 인하폭은 이미 반영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은행들이 대표격으로 내세우는 창구 예금상품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리은행은 1년 만기 대표 상품인 우리슈퍼주거래 정기예금이 같은 기간 2.4%에서 1.9%로 내려왔다. 또 국민수퍼정기예금은 1.95%에서 1.55%로, 하나머니세상 정기예금은 2.45%에서 1.65%로 금리가 0.4~0.8%포인트 내려왔다.
은행권은 통상 시장금리가 오를 땐 대출금리는 빨리 올리고 예금금리는 천천히 올리는 한편, 시장금리가 내릴 땐 반대로 움직인다는 비난을 듣는다. 이는 은행이 금리변동기에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격차)를 키워서 은행 수익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은행은 대출금리는 금융채 금리 등 시장금리를 거의 즉시 또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반영하지만 예금금리는 시장금리에 즉각적으로 연동하는 게 아니라고 항변해왔다. 정책금리인 한은의 기준금리는 물론, 보유자금 현황·경영정책·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해서 은행이 전략적으로 결정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금융소비자 처지에선 예금금리에 대한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이 어찌 보면 대출금리보다도 더 ‘오리무중’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은행권은 실제 한은 기준금리 움직임과는 별도로 지난 1년간 예금금리를 끊임없이 시장금리와 영업전략에 맞추어 조정해왔다. 실제 신한은행이 창구에서 파는 1년 만기 대표 예금상품인 에스드림정기예금(300만원 이상~1억원 미만)은 연 금리가 지난해 12월 말 1.97%에서 현재 1.65%로 0.32%포인트 내려와 있는데, 8월 말 한때는 1.45%까지 떨어뜨리기도 했다. 당시 채권금리가 역대 저점을 갈아치우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예금상품 금리를 결정할 때 금융채 1년물 금리 등 시장금리를 반영하지만, 영업전략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기 때문에 불규칙하게 변동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은행권에서 1년 만기 기준 예금상품으로 별다른 우대조건 없이 2%대 금리를 주는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급여이체와 카드 실적 등 주거래고객으로서 복잡한 우대요건 충족을 요구하거나, 특정 연령대 등에 한정된 상품 등 손에 꼽을 정도의 상품만 2%대를 제공할 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기와 인하폭의 문제일 뿐 은행권은 10월 기준금리 인하를 이유로 추가로 예금금리를 인하할 테니, 당분간 2%대 금리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며 “디엘에프 손실사태로 은행권 투자상품 불신도 커진 상태이다 보니, 이자생활자들 사이에선 ‘은행에서 재테크 하는 것 아니다’란 한숨 소리만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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