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의연대와 사모펀드 피해자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징계 및 배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단지 몇군데 금융회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은행 6곳, 증권사 17곳, 자산운용사 46곳 등 국내 주요 금융사 대부분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 앞으로 부실 사모펀드의 추가 발생 가능성이 높아 관련 금융회사가 더 늘어나면서 금융권 전반이 신뢰의 위기에 빠질 것이 우려된다.
16일 금융감독원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고한 자료를 보면, 올해 5월 현재 환매중단되거나 환매중단 가능성이 높은 사모펀드는 46개 자산운용사의 539개 펀드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내 자산운용사 233곳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운용사들이 사모펀드 설계와 운영 과정에서 부실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 펀드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에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형 금융회사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은행에서는 신한·우리·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을 포함해 6곳이, 증권사에서는 신한·대신·엔에이치(NH)·한투 등 대형 증권사를 포함해 17곳이 문제가 된 펀드를 판매했다.
관련된 금융회사 수로 따지면 이번 사모펀드 사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 국내 금융 사건으로 평가된다. 외환위기 이후에 발생한 대표적 금융 사건으로는 2003년 카드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꼽힌다. 카드 사태 때는 20개 카드사와 3개 은행이 법 위반 행위가 적발돼 제재를 받았고, 저축은행 사태 때는 저축은행 30곳이 문을 닫았다. 두 사건은 주로 카드사와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 특정 권역에 국한된 데 비해, 이번엔 은행과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여러 권역의 대표 금융사들이 대부분 포함된 게 특징이다.
5월 현재 문제가 된 펀드의 설정금액은 모두 5조8300억원에 이른다. 라임자산운용 펀드가 1조47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젠투자산운용 펀드(1조800억원), 옵티머스(5100억원), 디스커버리(4천억원), 알펜루트(3600억원) 등 순이다. 앞으로 다른 사모펀드에서도 유사한 부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내에서 투자된 상품도 문제지만 해외에 투자된 사모펀드들에서도 부실이 터져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금융 담당)는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외국의 호텔·오피스 등의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며 “이런 자산에 투자한 연기금과 보험사 등의 손실 규모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은 사모펀드의 설계, 판매, 운용 등 과정에서 제각기 수수료 수입을 챙기면서도 고객 자산 관리는 소홀히 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융사들의 펀드 부실 운영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떠넘겨진 셈이다. 뒤늦게 금융당국이 개입해 금융회사들에 보상에 나서도록 압박하고 있지만, 만기가 길어 손실을 확정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보상까지는 여러 해가 걸릴 전망이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사모펀드 부실은 카드 사태와 저축은행 사태에 버금가는 사안으로 커졌다”며 “주요 금융사들이 대부분 관련돼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금융권 전체가 신뢰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