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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상암동·창릉지구 코앞’ 화전서 땅투기 부추기는 퇴직 은행원들

등록 2021-05-26 04:59수정 2021-05-26 08:25

3기 새도시 지역농협 대출 2년새 급증
퇴직 은행원들이 ‘땅투기 중개인’ 노릇

지점 34곳서 작년 20조 넘게 대출
정부, 조만간 투기 혐의 검사 착수
21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 있는 고양창릉신도시 지구 일대. 이경미 기자
21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 있는 고양창릉신도시 지구 일대. 이경미 기자

지난 21일 찾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경의중앙선 화전역 일대는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농지와 고철 처리업체, 오래되고 낮은 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수십년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인 탓에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인적도 드물었다. 몇몇 부동산 업소 간판에 써 붙인 ‘토지 보상 상담’ 홍보문구가 이곳이 3기 새도시 지정 지역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고양창릉 공공주택지구(창릉 새도시)는 화전역과 지하철 3호선 원흥역 사이 812만6948㎡ 땅에 주택 3만8천호를 짓는 3기 새도시 사업지다. 2018년 3기 새도시 1차 발표 전 도면이 유출돼 1차 계획에선 제외됐고, 이듬해인 2019년 5월 지정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고양창릉지구에 속하는 화전동의 토지거래는 2017년 74건에서 도면 유출이 있었던 2018년 130건으로 두배 가까이 뛰었다. 2019년에는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49건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29건으로 감소했다.

화전역 인근의 한 부동산 업소 직원은 “새도시 지정 뒤에는 땅주인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매물을 내놓지 않아 거래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땅 보러 오겠다는 전화를 꾸준히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도 면적이 2평 정도 되는 땅을 사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투기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화전역은 고양창릉지구의 남쪽이다. 반대편 북쪽 원흥역 일대는 기존 택지개발지구인 삼송지구가 있다. 과거에는 ‘미분양의 무덤’이라 불렸지만 주변 개발과 3기 새도시 효과 덕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고양시가 개발 바람을 타면서 이곳의 지역농협 대출도 덩달아 늘었다. 고양시내 8개 농협의 대출금액은 2017년 3조5187억원에서 지난해 4조5111억원으로 3년간 28.2% 증가했다. 새도시 외 지역농협의 평균 증가율(21.8%)보다 6.4%포인트 높다. 고양뿐만 아니라 다른 3기 새도시 지역농협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25일 <한겨레>가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전국 1056개 농협의 대출 현황을 파악해보니, 3기 새도시 지역농협 34곳의 지난해 대출금액은 20조2245억원으로 집계됐다. 2년 전인 2018년 대출금액(16조6818억원)보다 21.2%(3조5427억원) 증가했다. 3기 새도시를 뺀 나머지 전국 1022곳에선 대출금액이 2018년 223조5832억원에서 지난해 252조5655억원으로 13%(28조9823억원) 늘었다. 3기 새도시 지역농협 대출 증가율이 다른 지역보다 8.2%포인트나 높다. 3기 새도시는 2018년 12월 남양주왕숙·하남교산·인천계양을 시작으로, 2019년 5월 고양창릉·부천대장, 2021년 2월 광명·시흥시가 차례로 발표됐다. 이곳에 자리잡은 지역농협들은 2018년까지는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대출이 증가했으나 3기 새도시 사업이 본격화된 2019년과 지난해엔 대출이 빠르게 늘었다.

이처럼 지역농협에 대출 수요가 몰리는 건, 농지나 임야는 담보가치 산정이 까다로워 시중은행이 잘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서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농협이 토지 담보대출에서는 시중은행보다 더 전문성이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신용사업으로 수익을 올리려는 농협이 개발이익을 노리는 투기꾼들과 만나면서 농협 대출이 땅투기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투기성 매매 가운데 여러 사람이 공유지분으로 땅을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땐 각자 지분만큼만 대출을 받으면 된다. 또는 한명이 대표 채무자가 되고 나머지 지분권자는 제3자 담보제공을 통해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퇴직 은행원들이 사실상 투기 ‘중개꾼’ 역할을 맡아 수수료를 챙기는 사례도 흔하다. 화전동의 또 다른 중개업소 사장은 “농협이 수신은 많이 하는데 모아둔 돈을 쓸 곳(여신 사업)이 없어서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해오고 있다”며 “주로 퇴직한 은행원들이 금융컨설팅을 하며 대출자를 찾아 지역농협을 소개해주고 대출자한테서 일정 수수료를 받아왔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최근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투기나 농협 임직원의 ‘셀프 대출’이 드러난 것과 관련해, 지역 주민들은 엘에이치 및 농협 일부 직원의 비위가 빙산의 일각이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화전동의 한 주민은 “이 동네에 살지는 않으면서 땅을 사놓고 주소 이전만 해놓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가 이번 부동산 투기 조사에서 그런 부분까지 싹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수년간 대출이 급증한 농협 지점을 중심으로 조만간 투기 혐의 검사에 착수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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