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화력발전소 등이 유발한 미세먼지가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진 날 서울 반포한강시민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뿌옇게 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화석연료는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환경 시민단체 활동가의 구호가 아니다. 지난해 8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유엔기후협약회의(COP24)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과 기후변화’ 특별보고서를 발표하며 서두에 올린 말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일찍이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관련된 연구와 국제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노력을 해왔다. 1991년 독일에 설립된 유럽 환경보건센터를 시작으로 대륙별로 연구센터를 설립해 구체적인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 나가고 있다. 올해 서울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세계보건기구 산하 아시아태평양 환경보건센터가 설립됐다.
아태 환경보건센터장을 맡은 마르코 마르투치 박사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이십년 넘게 환경문제와 건강의 관계를 연구해온 질병 역학 전문가다. 23일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연사로 나서 ‘기후변화가 인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강연한다. 그는 유럽 환경보건센터에서 유럽 전역의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건강과의 연계성을 분석하는 작업을 주도해왔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매립지, 해양오염 등 환경 분야별 데이터를 정량화하고 분석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매일 아침 확인하는 미세먼지 예보 기준도 이 프로젝트에서 처음 제시됐다. 마르투치 박사는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각국 정부는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얼마나, 어떤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며 “국가·지역별로 기후위기와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를 정량화하고 평가·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마르코 마르투치 세계보건기구(WHO) 아태 환경보건센터장
마르투치 센터장의 최근 연구 주제는 기후변화와 건강 불평등의 문제로 넓혀지고 있다. 그는 저소득 계층이 기후변화 등 환경 위협에 더 취약하다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공동연구에 참여해 올해 6월 나온 ‘유럽의 환경 건강 불평등’ 보고서의 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유럽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요인으로 숨진 사람들을 분석해보니 소득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보다 사망 위험이 5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마르투치 센터장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계층이 오히려 더 많은 건강 위협에 놓인 ‘환경 불평등’의 대표적 사례”라며 “기후변화에 취약한 집단을 찾아내는 등 환경 불평등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 불평등은 국가 안에서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로 생존의 위험에 처한 남태평양 제도 국가들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9월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에게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정지원 등 국제적 협력을 요청했다. 마르투치 센터장도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과 건강 불평등은 지역과 정부, 국가 등 전 지구적 단계에서 조치를 취해야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며 국내외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강조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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