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인구 5천만명 이상-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이상)에 가입한 나라지만, 소득·교육·지역·노동 등 여러 분야에서 격차가 확대돼 국민의 행복 수준은 국가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과연 격차 문제 해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서울 포이동 구룡마을 뒤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은 2017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1734달러(한국은행 2019년 6월 기준연도 개편 통계)로 3만달러를 넘어섰다. 이로써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인구 5천만명 이상-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이상)에 들어선 국가가 됐다. 앞서 30-50클럽에 진입한 여섯 나라인 미국·독일·영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는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자, 주요7개국(G7) 멤버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가운데 선진국 진입 지표의 하나인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은, 한국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하지만 ‘삶의 질’을 보여주는 다른 지표들은 한국 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준다. 노인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최고이고, 양극화 심화와 청년실업 속에 사회적 위화감이 확대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공공부문 비정규직 축소 등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불평등이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 격차 또한 심해지고 있다.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24일 오전에 열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주관 ‘격차사회와 포용국가’ 세션에서는 이런 한국 사회 격차 문제의 현황과 해소 방안을 논의한다. 김태완 보사연 연구위원이 ‘한국의 격차실태와 포용복지’를 주제로 발제하고, 로버트 페이지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 교수와 김명중 일본 닛세이기초연구소 박사가 각각 영국의 사회 격차 현황과 국제적 추세, 일본의 사회 격차 해소 방안 등을 소개한다.
김 연구위원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표방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포용’이 얼마나 현실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짚는다. 안타깝지만, 큰 틀에서의 변화는 아직 없다. 올해 다소 둔화했다지만, 소득분배는 지난해 더욱 악화했고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사이 격차 또한 여전하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 소득분위별 사교육비 격차가 늘면서 계층사다리의 붕괴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국민 행복 수준은 여전히 국가 수준(경제력 기준 세계 11~12위)을 크게 밑돌고 있다.
해결책은 자명하다. 확장적 복지가 첫손에 꼽힌다. 국민연금 개혁과 기초보장제도 보장성 강화, 공공형 일자리 확대를 통한 노인빈곤 해소가 시급하고, 청년·여성·이주노동자 등 배제계층의 노동시장 접근성 개선도 주요하게 고려할 사항이다. 이와 함께 △지역 △노동시장 △교육 △남녀 등 부문별로 적극적인 격차 해소 정책도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김 연구위원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분권 강화와 더불어 수도권 주요 대학의 지방이전 독려와 재정지원이, 노동시장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와 더불어 기업별 복지에서 국가 복지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확장적 복지와 부문별 격차 해소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세원 발굴, 그리고 누진세 및 보유세 강화 등을 통한 재정 확충이 필수지만, 한국적 정치 현실에서 공론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과제다.
로버트 페이지 교수는 영국 재정연구소(IFS)의 ‘21세기의 불평등’ 보고서 등을 인용해 1970년대에 3%였던 상위 1% 가구의 소득 점유율이 8%까지 올라가고, 최고경영자 평균 급여는 20년 전보다 3배 늘어, 노동자 평균의 145배에 이르는 등 영국의 격차 확대 양상을 소개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에서는 소득재분배와 부유세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유권자들의 지지 확보는 생각보다 어려운 ‘숙제’임도 강조할 예정이다.
김명중 박사는 흔히 ‘20년 뒤 한국의 모습’으로 얘기되는 일본의 격차 문제를 소개한다. 2012년 아베노믹스가 본격화하며 일본의 실업률과 빈곤율이 낮아졌지만, 실질임금 상승률은 경제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고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에게도 건강보험과 복지연금보험 가입 문호를 확대하는 등 격차 축소에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재분배 정책도 세대 간 조정에 편향돼 있어 새로운 빈곤과 소득불균형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박사의 시각이다.
토론자로는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와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 김문길 보사연 연구위원 등이 나서며, 조흥식 보사연 원장이 좌장을 맡는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