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전북 남원에 38년 만에 귀향해 4년 전에 식당을 연 강형구(맨 왼쪽)씨와 이경진(맨 오른쪽)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전국에 추어탕과 김부각을 택배 배송해 팔고, 지역 특산물의 브랜딩을 고민하는 ‘신중년’이다. 이들 부부는 탁구, 캘리그래피, 시읽기, 백두대간 지킴이(환경보호 활동) 등 동네 사람들과 동아리 활동도 활발히 한다. 사진은 백두대간 지킴이 회원들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다. 강형구 제공
2020년은 인구 구성에 있어 여러모로 기점이 되는 해다. 2019년 말에 처음으로 800만명을 돌파한 만 65살 이상 고령층에 베이비붐 세대(베이비부머)인 1955년생이 올해 처음 진입했다. 1차 베이비부머라고 불리는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의 인구는 현세대 고령층 인구와 맞먹는 765만명이다. 고령층만이 아니라 중년층의 구성도 바뀐다. 올해 X세대라 불린 1970년생이 처음 만 50살이 되었다. 1970년 출생아 수는 101만명으로 30만명을 넘기기도 힘겨워 보이는 올해 출생아 수와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1970년생을 포함하는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와 1차 베이비부머, 그 사이에 낀 세대(1964~1967년생)를 합한 인구는 1685만명으로 전인구의 32.4%에 이른다. 거대 인구층의 고령화가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면 선제적으로 ‘중년 정책’을 고민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는 이 거대 인구층의 일부라도 지역으로 분산될 수 있다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수도권과 광역시에 쏠린 인구가 분산되는 만큼 치솟기만 하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수 있고, 청년층이 도시에 안착하고 일자리를 얻을 기회도 생긴다는 주장이다. 인구가 줄기만 하는 지방도 기존의 고령층과는 다른 베이비부머의 이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그가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라는 저서를 통해 나름의 대안들을 제시하긴 했지만, 아직 귀촌·귀농에 대한 관심이나 인구 분산의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가 뚜렷하진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19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를 보면 도시민 1500명 가운데 은퇴 후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비율은 34.6%였다. 적지 않은 비중이지만 문제는 추세다. 매년 벌이는 이 조사에서 귀농·귀촌 의향이 있는 비중은 2011년 전체의 63.7%였고,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다.
다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의 경향은 비슷하다. 2019년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신중년의 안정적 노후 정착 지원을 위한 생활실태조사>를 보면 귀농귀촌종합센터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설문에 응답한 50, 60대 4006명 가운데 26.4%가 알고 있다고 답했다. 향후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비율도 전체의 20.4%에 그쳤다. 한편 이 실태조사에서 노후에 가장 즐기고 싶은 여가활동의 1순위가 ‘국내외 여행’(31.2%)이었고, 등산(11.7%), 티브이 시청(9.1%), 산책(7.2%), 친목단체·사교활동(5.5%) 순이었다.
귀촌엔 아직 큰 관심이 없지만, 국내외 여행에 흥미가 있다면 일단 여러 곳을 여행하며 겪어본 뒤에 지역에서의 삶을 모색해보면 어떨까. 이미 이런 시도를 한 사례가 있다. 서울도심권50플러스센터와 이 센터의 일자리본부장을 지내다 신중년과 지역을 잇자는 취지로 여행벤처기업 패스파인더를 설립한 김만희 대표는 지난해 6월부터 함께 전라북도 남원을 여행하고, 지역살이를 모색하며 그 과정을 기록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김 대표는 “귀농·귀촌이라고 하면 지역에 내려가 집 사고, 땅을 사야 할 것 같은 무거운 주제다. 지역을 여행해보면서 마음에 들면 한달이든, 일년이든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귀촌에 대한 문턱을 낮춰보려는 취지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중년 16명이 남원의 곳곳을 다니며 지역 사람들을 만난 결과물을 엮어 <남원에서 살아보기>란 책을 올해 3월 펴냈다. 이들은 학원업, 보험업, 건설업, 대기업 전산부서 등의 분야에서 일했거나, 외국에 오래 거주한 웹디자이너이거나, 이미 귀촌을 했다가 적응에 실패해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이들에겐 30여년 동안 충실히 해오던 소득활동과 가족돌봄의 책임에서 조금은 벗어났고, 지역에서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궁금증도 남원에서 소득이 있는 ‘일거리’, 소득이 적더라도 의미있는 ‘할거리’, 즐길 수 있는 ‘놀거리’ 등이 있는가로 비슷했다. 이런 궁금증을 풀고자 이들은 지역의 문화공간,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을 찾거나, 먼저 남원에 와서 고군분투하는 귀촌자들을 만났다. 남원 운봉읍에서 식당 ‘풍경인’을 운영하는 강형구(60), 이경진(60)씨 부부도 그렇게 만난 사례다. 강씨는 1979년 고향 남원을 떠나 울산에 가서 사회복지시설과 학원 등을 운영하다 37년 만인 2016년에 귀촌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강씨는 “지역에서 농사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오히려 농사는 쉽지 않다. 자본이 많아 대형화, 자동화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육체적으로도 고되다. 그나마 복지시설을 운영해본 적이 있고, 작은 텃밭과 이웃에게서 식재료를 구하기가 쉬워 식당을 하게 됐다”며 “이 지역이 해발 500미터로 시원해 나물과 채소가 맛있다”고 덧붙였다. 도시보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다.
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마을활동가를 양성하고, 지역 잡지를 발행하는 남원시 공동체지원센터에선 농산물 가공업이나 브랜드 마케팅, 노인 돌봄과 산촌 아동교육 등 신중년이 가진 소양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일거리 등을 제시했다. 남원시 문화도시사업 추진위원회는 판소리, 도예, 공예, 회화 등의 동아리가 80여개에 이를 정도로 문화적 활동이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남원시청은 목공예, 생활스포츠 등 지자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보조하거나, 읍면마다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등의 일자리 소요가 지속적으로 있다고 밝혔다. 이형정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 센터장은 “처음부터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찾을 게 아니라, 하던 일을 지역에서 그대로 하거나, 지역에 머물면서 기존 경력을 활용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라며 “코로나로 인해 도시에서도 많은 일들이 원격으로 이뤄지는 등 공간적 제약이 사라지고 있어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며 밀집되지 않은 지역에 살아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만희 대표는 “그동안의 지역에선 주로 청년을 데려와야 한다고 하는데, 청년들이 와서 카페나 베이커리를 열어도 지역의 어르신들은 그런 것들을 잘 소비하지 않는다. 지역에 50대, 60대들이 와서 그것들을 소비해야 젊은층들이 지역에 자리를 잡는 기반도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실제 도시에서 귀촌한 신중년은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적극 이용하고, 브랜드를 고려해 상품을 기획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식당 ‘풍경인’을 운영하는 강형구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추어탕을 전국에 택배 배송하며 팔고 있다. 인근 지리산 바래봉이 철쭉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피는 명소인데, 이런 지역의 특징을 이용한 특산물을 하나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도심권50플러스센터와 패스파인더는 코로나가 진정되는 대로 지난해 남원에 이어 올해 예정됐던 강릉을 포함해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지역살이를 모색하는 프로그램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거주지를 바꾸면 개인의 삶은 크게 변한다. 따라서 국토 균형발전과 인구 분산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해도, 삶의 기반을 바꾸는 지역 이주를 개인에게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사회의 필요를 위해 개개인을 불확실하고 부담이 큰 선택을 하라고 다그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일주일, 한달, 두달이라도 지역에 머물면서 그곳에서의 삶을 모색해보고, 무엇이 좋은지 혹은 무엇이 더 필요한지 등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모색을 기반으로 귀촌 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형중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